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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Jul 09. 2019

시를 쓰기 위한 시


2019년 7월 2일

제주시 황사평길 65 리버힐 101동 103호



우체국을 향해 뛴다

가게를 열어 둔 채

나는 달리고 있다

얼마 못 가서

정강이로 무게가 쏠리고 

발목이 견디기 어려울 때

문뜩 시를 쓰고 말겠다는 심리


호흡이 가빠지고

다리에 힘이 풀려도

조금만 힘을 내

난 시를 쓸 거야


하지만, 더는 달리지 못하고

우체국은 점점 멀어진다

가게는 손님이 기다릴지도 모르고

다리는 달리지도 못하고 

심장은 시도 못 쓰고


우체국에서 관제엽서에 시를 쓴다

중요한 문장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쿵쾅거리는 심장이 집어삼킨 것일까

아무도 없는 가게에서 기다리는 손님의 저주 때문인가

결국 시를 다 쓰지 못한 채 엽서를 봉하고

느린 말투로

"가장 빠른 것으로 해주세요” 

무표정한 주무관은 빠르게 답한다

“제주도는 좀 더 걸립니다” 


나는 다시 가게를 향해 달리려다

손님이 기다리건 말건 

더는 달리지 못했다



2019년 7월 5일

제주시 황사평길 65 리버힐 101동 103호


샤워를 마치고 편지 봉투를 연 석희는

편지를 꺼내어 몇 줄 안 되는 글을 읽다 말고 

맥주를 딴다

리모컨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편지는 까맣게 잊어버린다

맥주 밑에 깔린 편지는 

물기에 젖어 번지는데

그것은 시인지 시가 아닌지


쏟아지는 빗줄기,  버거움에 휘청거리며 

고개 숙인 늙은 화초처럼

커피 한 모금에 고개를 묻고

연필을 노려본다

기어코 시를 쓰겠다는 심리


비는 내리는데

무릎은 시려오고

손님은 오지 않고

연필은 제 할 일을 못 한다

하얀 종이의 단단함 위에 

역류성 식도염

한 줄 시만 적어놓고

빨대만 우그적 우그적





illruwa

instagram @illruw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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