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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Jul 10. 2019

역류성 식도염


역류성 식도염



일곱 살 꼬마는 대뜸

역류성 식도염이라 커피를 마실 수 없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내 손엔 커피가 있었다

꼬마는 엄마의 심부름이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스무 살 석희는 헤어진 애인이 역류성 식도염이 됐다고 한다

그래서 과자를 먹을 수 없다고 했다

내 손에 새우깡을 한참을 노려보며 자꾸만 생각난다고 했다

애인? 하고 물으니 새우깡이 생각난다며 남은 새우깡을 들고 가버렸다


나의 고민은 역류성 식도염이었다

식도를 타고 오르는 격렬함은 얼굴에 깊은 주름을 만든다

그런데도 커피를 그만둘 수 없고 과자를 멈출 수 없다

그것은 잊을 만하면 찾아왔다


어느 밤

역류성 식도염의 고민도 알았다

고민은 나였다

역류성 식도염은 커피와 과자를 싫어한다

하지만 나의 손엔 커피와 과자가 끊이지 않았다

역류성 식도염이 흥분할 때마다

나는 얼굴에 또 하나의 깊은 주름을 만든다

마지막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던 그날 밤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정류장을 지나치려 할 때

나를 깨워준 건 역류성 식도염이었다

목구멍을 긁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버스에서 내렸다

내 안에 역류성 식도염을 위해

주머니 속 초콜릿을 꺼내어 벤치에 올려놓았다

청결한 위장 모양의 달이 훤하게 비추고 있었다





illruwa

instagram @illruw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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