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상영
기묘한 전화
언니
우리 엄마는 나를 낳지 않았어요
그냥 언니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숨기고 사는 일은 너무 힘들어요
나는 동생 셋을 다 업어 키웠어요
그래서 키가 자라지 않았나 봐요
우리 엄마는 병원에서 일했어요
둘째 동생은 남자들에게 인기가 좋았죠
언니 나는 가끔 멜론이 먹고 싶어요
너무 익지도 않고 덜 익지도 않은
딱 알맞게 익은 멜론을 찾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에요
작년에는 참 힘들었어요
애인하고도 안 좋았구요
세례도 받고 마음 공부도 다녔지만
나아지지 않았어요
언니에게 무슨 이유가 있어서 전화를 건 건 아니에요
나는 그동안 억울하게 일했어요
내 글은 한 번도 제대로 읽혀지지 못했죠
차라리 화를 내면 좋았을 텐데
늘 나보다 어린 후배들이 내 기회를 가져가버렸어요
언니 마음을 여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멜론은 말이죠 꼭지를 잘 관찰해야 돼요
썩거나 검은색이 되었다면 곤란해요
촘촘한 껍질의 그물이 진하고 깊은 것
그게 바로 좋은 멜론이래요
언니 나는 음악을 공부했어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죠
학부형이라면 이골이 나요
그들은 늘 나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는데
어느새 나도 불만을 털어놓곤 하네요
언니 이제 곧 장마래요
그래서 자꾸 나무에서 작은 열매들이
우수수 떨어지나 봐요
눅눅한 날에 즙이 가득한 멜론을 먹는다면
상쾌할 텐데
나는 이제 많이 괜찮아졌어요
정말이에요
언니 우리 꼭 만나요
세 번째 성공을 하게 되는 날 언니에게 다시
전화할게요
이상영
instagram @eume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