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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Jul 28. 2019

비는 좋지만

시속 3km의 영동대교

버스 창에 기대어 쏟아지는 비를 본다


회색의 하늘에서 검은 땅끝까지 세상은 온통 비

이런 날에 사람들은 창가에 달라붙는다

맞은편 창에서는 거세게 달려온 비가 창문을 때리면서 퍽하고 부서지며 

피의 거죽처럼 질퍽하게 창을 타고 흐른다

그 모습이 좀비를 닮았고 석희는 생각했다. 사력을 다해 떨어지고 부딪치고 흘러내리고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쓸어내고 훑어가며 가장 낮은 곳으로 집결하는 것이 좀비의 목적.


멀리

길 잃은 검은 새 한 마리  한강 위를 떠돈다

젖은 날개 쉴 곳이 보이질 않아 계속 떠돈다

강은 살찌고 도시는 무겁게 내려앉았다

비가 없는 곳을 찾는 것은 새의 갈망.


세상에 이런 폭우는 처음이라며 

피자 배달하는 석희는 처마 밑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태운다 

오늘은 사람들 모두 김치전을 먹어라

그것은 빗 속에 세워둔 석희 오토바이의 열망.


의자에 턱을 게고 있는 서울생활 10년 차의  핫산도 비를 본다. 

핫산의 바지 주머니에 빼꼼하고 나와있는 걸레 이름도 핫산이다. 

오늘도 공쳤다고 말하는 세차장 사장의 섞은 한 숨에 핫산은 더 불안해진다 

오늘이 월급날이기 때문이다

사장 놈의 주둥이를 닦고 싶다고 주머니 속의 핫산은 생각한다

더러운 것을 닦아내는 것이 걸레의 역할.


세상은 온통 비

이런 날 사람들은 창가에 달라붙는다

6단지 상가의 사람들

타워팰리스의 사람들 아파트 경비원 롯데타워의 직장인 

영동대교 석희 피자배달 석희 세차장의 핫산들과 그의 사장도 비를 본다

비를 보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겁게 내리는 비에 취해

라디오의 호우특보를 아무도 듣지  못한다

하늘엔 아직 비가 많다는데


까마득히 멀리

검은 하늘이 조금씩 열리고

그사이로  보이는 최초의 흰구름

그것은 하늘의 부할.


illruwa

instagram @illruw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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