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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Aug 16. 2019

여름 끝

by 승민



생각이 나쁜 쪽으로 흐르고 멈추기를 반복한다. 여긴 계절을 잃어서 자꾸 비를 쏟고 멈추기를 반복한다. 생각이 나쁜 쪽으로 흐른다. 


많은 것들이 서로 부딪히고 있다. 바람은 집을 향하는데 내 몸은 일터로 향한다. 앞치마를 두른 내가 새벽 4시 술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으면, 세상에서 나 혼자만 멈춰버린 것 같다. 달아오른 얼굴들은 춤을 추며 지나간다. 그렇게 새벽을 다음 낮을 그리고 또 새벽을 보낸다. 내 몸은 흐르고 멈추기를 반복해서 여름의 끝에 도달한다. 여름 끝은 우리 집에서 너무 먼 것 같다.


중년의 아빠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그 삶을 모른다. 아빠가 운다. 할아버지가 아프고 할머니가 기억을 잃어가는 건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친구의 한숨이 바닥에 꽂힌다. 학교 건물 뒤의 우리는 매일 같은 산의 풍경을 오늘도 하염없이 바라본다. 우리의 바람은 이곳에 없었다. 나는 요새 여느 때보다도 건강한 표정으로 살아간다. 내가 짊어진 것들의 무게는 가볍다. 그것들 각자의 바람은 다른 먼 곳에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달이 밝고 비구름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귀뚜라미 소리가 허공에서 가라앉았다. 많은 것들이 서로 부딪히고 있다. 허전한 나는 멈춰버린 것만 같다.




by 승민

instagram @seungm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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