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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Aug 23. 2019

침대 버리러 가던 날



침대 버리러 가던 날

트럭 짐칸에 침대를 실어놓고

난 그위에 누웠다


바람이 불었겠지 기분 좋은 바람

신호에 멈춰서도 난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트럭이 회전을 하면 그대로 몸을 맡겼겠지

빙그르르 몸이 움직였다가 또로록 자리로 돌아왔을 거야

잠이 들었을지도 모르지

지쳐있었을 테니까


차는 오사카 시내를 벗어나 

속력이 붙었겠지

초저녁 하늘이 얼굴에 스친고

난 별을 봤을지도 모르고

비행하는 새들의 하얀 배를 봤을 수도 있겠지

강변의 하천 냄새, 풀냄새, 주택가를 지났다면 밥 짓는 냄새를 맡았겠지

고양이의 인기척 개 짖는 소리도 들렸겠지

우리는

어느 한적한 교외에 침대를 투기하고 돌아왔을 거야

침대의 최후를 돌 볼 새도 없이

난 조수석에 앉았겠지

코를 골며 골아떨어졌을 거야

난 피곤했으니까


20년 후의 기억은 

시간을 지우고

누구의 침대인 지를 지우고

왜 버렸는지를 지우고

어디다 버렸는지를 지우고


슬픈 기억은 자라나지 못하게 

싹둑 잘라버렸고

남은 기억은 햇빛 잘 드는 곳에서

정성스레 물 주고 바람 쐐 주며

고이고이 키워왔네


침대 버리러 가던 날

트럭 짐칸에 침대를 실어놓고

난 그위에 누웠고

기분이 좋았다네

아마.





illruwa

instagram @ illruw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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