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by 지구불시착 김택수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당신이 찾아온 계절은 아마 4월일 가능성이 높네요. 모두들 그 계절에 찾아오니까요. 벚꽃은 흐드러지게 피었던가요? 아니면 나처럼 초가을에 오셨나요? 태풍은 없었던가요? 그렇다면 당신은 왕벚나무와 반듯한 사연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누구도 이 계절에 벚꽃나무를 찾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혹, 어쩌면 말입니다 에밀 타케와 왕벚나무 이야기가 세상에 잘 알려져 4월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이곳을 찾아왔을 때는 9월이었습니다. 태풍과 함께 왔습니다. 변덕스러운 날씨는 길을 쉽게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폭우와 침수를 견뎌내야 했었습니다. 당연히 벚꽃은 없었습니다. 지인이 그러더군요. 벚꽃도 없는데 뭐하러 거길 가는 거냐고.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꽃은 없지만 나무는 있을 거라고. 꽤나 근사한 대답이라 생각했습니다.


비, 초록, 풀, 이끼, 바람, 가을, 태풍, 그리고 왕벚나무. 살아가면서 이보다 비밀스러운 낭만과 조우하기는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에 젖은 초록은 근사했습니다. 로맨틱했지요. 9월의 벚나무가 이리도 로맨틱해서 4월의 벚꽃이 무색할 정도였습니다.


516 도로를 따라 신혜리의 왕벚나무 자생지를 향하는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굽이치는 도로 위 한 치 앞을 분간하기도 쉽지 않은 짙은 안개와 엄청난 폭우는 마치 일부러 설치해놓은 함정 같았습니다. 그 부비트랩을 지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성배처럼 신혜리 왕벚나무 자생지는 꽁꽁 숨어 있었습니다. 엄청난 역사의 수수께끼를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고고학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주소지마저 불분명해 이쯤일 거라는 촉을 발휘해야만 했습니다. 차를 세울 수 없을 만큼의 좁은 갓길 위에 세워 두고 안갯속에도 불구하고 차가 끓이지 않는 2차선 도로를 건너야만 했습니다. 신혜리 왕벚나무 자생지라는 작은 푯말은 일부러 흘려놓은 수수께끼의 힌트 같은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푯말을 따라 확신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작은 숲터널을 자나야 했는데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비는 이윽고 거센소리로 변하니 판타지 드라마의 시작을 알리는 듯했습니다. 불친절했던 입구와 달리 숲터널의 바닥 길은 잘 정돈돼있었습니다. 이윽고 시야가 트이면 나타나는 왕벚나무 자생지는 너무나도 드라마틱해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아마 당신도 저와 같은 신묘함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후는 시시각각 급변해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카메라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지경이었는데 한 가지 이상한 건 벚꽃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흩날리는 연핑크의 아름다움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변덕스러운 한라산의 기후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선명한 색을 뿜어내는 초록은 9월 벚나무의 또 다른 생명력이었습니다. 가을이 지나면 하얗게 눈이 올라앉을 것입니다. 그것도 역시 일품 장관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비는 점점 거세져 다음 코스로 발길은 바빴기에 이만 돌아서야 했지만 나무로 만들어진 바닥이 젖은 비에 미끄러워져 쉬이 걸어 내려올 수 없었습니다. 오래도록 사람을 기다려온 왕벚나무는 그렇게 잠시라도 사람을 붙잡고 싶었나 봅니다. 다시 숲터널을 나와 세워둔 차까지 걸어가는 길은 위험천만한 도로였습니다. 마치 나는 잘 관리할 테니 너는 오지 말라는 관의 불친절한 배려가 사실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당신은 그때의 내가 그랬듯이 잘 찍힌 사진 속의 액자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이 들 것입니다. 정말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이미지 일 것입니다. 나는 서둘러 다음 왕벚나무 자생지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2000년 초반에 일본 오사카에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일본은 벚꽃에 유달리 깊은 정을 쏟아냅니다. 그것이 은근히 부럽기도 했습니다. 영화 <4月物語り> 4월 이야기를 볼 때면 신부가 눈꽃 날리는 거리를 걷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장면들이 일본적이라고 말합니다. 벚꽃과 일본은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윤중로의 벚꽃축제가 일본 꽃이라며 나무를 베어버리는 사건은 가벼운 해프닝으로 넘길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는 벚꽃에 무지했지만, 모두가 우리 벚꽃에 무심했던 탓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 것을 일본에 넘겨주는 꼴이 돼버렸습니다. 왕벚나무의 뿌리는 제주도에 있습니다. 왕벚나무는 에밀 타케 신부에 의해 제주도에 자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세계 식물 학계에 알려지게 됩니다. 일본은 그 어디에서도 왕벚나무의 자생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합니다. 에밀 타케 신부는 왕벚나무의 뿌리를 밝혀내기도 했지만 제주 감귤산업의 초석을 다지기도 했고 또한 제주 구상나무를 최초 발견자이기도 합니다. 제주의 구상나무는 지금 세계의 크리스마스트리로 사랑받는 나무입니다.


봉개동 왕벚나무 자생지를 지나 관음사, 관음사 휴게소의 왕벚나무 기준 어미나무까지 가보았습니다. 이 여정은 나에게 새로운 지식의 길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에밀 타케 신부에게 드리는 감사의 길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타케 신부 알리기에 대해서는 옹색하기만 합니다. 우리 왕벚나무의 뿌리를 증명해나가는 길은 그 옛날 식물 채집을 위해 한라산 구석구석을 헤매던 타케 신부의 족적을 찾는 일과도 같았습니다.


당신도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면, 그건 우연이 아니길 바랍니다. 부디 많은 사람이 왕벚나무와 에밀 타케 신부의 이야기를 알고, 그 길을 따라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아름다움에는 그에 걸맞은 스토리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제주에 프랑스 신부 에밀 타케의 이야기가 더해진다면 진실한 아름다움을 찾는 첫 번째 관문으로서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죽음을 앞에 둔 묘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글을 인용했습니다. 먼저 산 에밀 타케 신부에게 감사를 담은 이 편지를 왕벚나무를 찾은 지금의 나와 앞으로 왕벚나무를 찾아 올 당신에게 띄웁니다.



illru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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