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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Nov 05. 2019

이상한 모든 것들

  



  마을 사람들과 버스 2대를 나눠 타 수확여행을 다녀왔습니다. 60여 명 정도가 트랙터도 타고, 강정도 만들고, 맛있는 밥 먹고, 농사에 대해, 쌀에 대해 배우고, 누에의 일생에 대해서도 듣고. 에이티 이어스 올드 삼촌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 약간은 외로워질 것을 예상했었습니다. 대체로 즐겁진 않았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계절은 가을이고, 산도 가을이고, 사람들 마음속도 가을, 나도 가을이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나는 웃지 못하고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5시 이후에 갈 곳을 찾다 결국 책바으로 돌아와 왜 이곳으로 왔는지? 왜 집으로 가지 않았는지? 지갑에 돈을 세고, 구입할 책을 고르고, 비빔면을 먹었습니다. 배는 불렀지만 맛없고 책은 골랐지만 사지 못했으니 아무것도 안 한 거였습니다. 오래된 사진을 뒤적거리다 더 오래된 사진을 찾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사두어둔 픽사티브가 보였습니다. 그림이 퇴색되거나 번지지 않도록 정착시키는 픽사티브는 아직 뚜껑을 열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제대로 그림을 그려볼까 하다 말았고, SNS를 하려다 스마트폰을 덥어버렸습니다. 우쿨렐레는 더 이상의 흥미를 못 느껴서  5초 이상 두드리지 않습니다. 불 꺼진 곳에 오래 있는 것도 안 좋겠다 싶어서 틀어 논 드라마는 어느덧 마지막 회였고 너무 재미있어서 대사 하나를 안 놓치려고 면을 끓일 때도 화장실 갈 때도 멈춤과 되감기를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런데도 안 들린 대사가 많고 못 본 장면이 많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오늘 하루에 대해 누군가 물어보면 이상한 모든 것들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오늘 난 계속, 무엇인가 기다리는 기분이었습니다.





illru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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