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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Nov 07. 2019

삐융삐융

by 유야



삐융삐융



(카페에서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있다. 오랜만에 만난 사이인 두 사람이다. 어제 본 것처럼 천역 덕스럽게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오는 길에 블루투스 이어폰에서 '삐융삐융' 소리가 들렸어. 배터리가 얼마 안 남았다는 신호야. 반년 넘게 사용하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를 들은 거야. 지금까지는 배터리가 얼마 안 남았으면 충전을 했거든. 요즘은 이어폰 충전하는 것도 까먹을 정도였나 봐.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충전하면 충분한 이어폰인데. 언제 마지막으로 충전했는지 기억이 안 나네. 난 매일 아침, 저녁으로 지하철에서는 무조건 이어폰을 끼는 편이거든. 무조건. 지하철은 시끄럽잖아. 술 취한 아저씨들에, 시끄럽게 전화하는 노인들에, 거기다가 시끄러운 열차 소리까지. 맨 귀로 있기에는 너무 고통스럽잖아. 하여튼 나는 지하철에서는 이어폰을 끼고 항상 책을 꺼네. 꼭 읽는 건 아니고. 약간 루틴이랄까? 멋있어 보이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 


어제는 말이야, 이어폰을 귀에 껴 놓고는, 집에 갈 때까지 음악을 안 틀었더라고. 습관적으로 이어폰을 꼈지만, 재생 버튼 누르는 걸 까먹은 거야. 그걸 집에 가서야 알았어. 책 꺼내놓고는 안 읽는 거랑 비슷한 건가? 요즘 내가 그래. 뭐 딱히 하는 건 없는 것 같은 데. 바빠. 정신이 바쁘다랄까. 그렇다고 뭘 하는 건 아니야. 그냥 이리저리. 가방 들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거지.


내가 중학생 때 학원을 다녔는데. 정말 매일 갔어. 학교 끝나고 학원으로 바로 갔다가, 저녁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왔거든. 정말 매일매일이 그랬어. 엄마가 어느 날 그러더라고. 매일 그냥 책가방 메고 왔다 갔다 할빠에는 학원 끊으라고. 돈 아깝다고. 집에 와서 책가방 열어보는 꼴을 못 보니까 엄마가 그랬던 거겠지. 생각해보니까 엄마도 참.... 너무하네. 요즘이 딱 내가 그런 모습인 것 같다. 하여튼 난 요즘 그래. 오늘 집에 가는 길에는 음악 못 듣겠다. 뭐 별 상관없나?


하여튼 니 아들내미 학원 보낸다는 거 다시 생각해봐. 무슨 초등학생이 종합학원이니? 나처럼 된다야."










by 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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