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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Dec 06. 2019

나는 말을 안고 공항으로 향했다

 2015년 10월 1일 나는 간사이 공항에 있었다. 의외로 마음은 편안했다. 그 상황에 꼭 있어야 할 곳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날은 공항이 아니었다면 그 어디에 있더라도 폭풍의 진로는 나를 향해있었다. 10년을 함께 해 온 바이어는 돈이 있으면 줄 거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무실 집기는 팔려 가고 나는 그 집기의 운반을 돕고 있었다. 이러려고 오사카까지 날아온 것은 아닌데, 아니야... 돈을 못 준다는 바이어는 떳떳했고, 돈을 받으러 간 나는 비굴했다. 서울에서 아내는 초조했을 것이다. 우린 이제 망했다고 생각했다. 처지는 그랬다. 나는 말을 안고 공항으로 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공항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입국 수속을 끝내고 면세점을 지나 출발 게이트 주변, 의자가 나란히 놓여있는 공간이다. 사람이 없으면 없을수록 좋지만 적당한 사람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 좋다. 바닥은 아무 데나 주저앉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청소가 잘 된 카펫, 둥근 모양의 모던한 벽시계, 아부다비, 요하네스버그, 부다페스트, 레바논, 마이애미와 트리폴리, 뉴욕, 런던 이런 판타지들이 현실화하는 세련된 폰트의 숫자와 글자, 햇볕이 잘 들고, 간간이 이곳이 공항임을 알리는 국제적 감각의 언어가 방송되는 곳. 널찍한 창, 속력을 더해 활주로를 박차고 떠오르는 거대한 비행기, 그 순간을 놓칠세라 카메라를 얼굴에 바짝 붙이고 찰나를 조준하는 사람. 커다란 백팩을 베개 삼아 귀에는 블루투스 헤드셋을 끼고 스마트폰을 하는 사람. 게임 삼매경의 아이들, 공항에선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제지하는 어른은 보기 드물 것이다. 몇몇이 널찍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들은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사인보드와 방송이 분주해지면 그제야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 사람들. 사인보드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뀐 것은 이 시대의 실수일 것이다. 모든 것이 편리에 따라 디지털을 선호한다지만 파닥파닥 소리를 내며 회전하는 아날로그 방식의 사인 보드만은 바뀌면 안 되는 거였다.라고 별 쓸데없는 생각을 해도, 지금의 처지에서 우주만큼 떨어진 이상한 상상을 한다 해도 여기서는 내 마음이다. 돌아와 엄연한 현실이 마중 나왔다 하더라도 공항에선 아무것도 할 수도 없고 하지 않아도 된다. 평온하고, 햇빛이 잘 들고, 누구도 뭐라 하지 않고,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것이 이 장소의 가장 큰 매력이다.






 마음이 좀 편안해졌던가.


가을 돌풍이

아사마 산 위

돌들을 따라 불어 간다


 바쇼의 시를 기억하며 비행기에 올라탔다.





illru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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