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 Dec 07. 2019

고양이는 정말 귀여워

귀여운 앙이들, 모이 모이 ! 




 매일 아침 거의 똑같은 시간에 일어난다. 평일엔 출근하기 위해서이고, 주말엔 습관적으로 그 시간에 눈이 떠진다. 눈을 뜨면 너부리가 옆에 있다. 우리는 한 이불을 덮고 사는 사이다. 원래는 타이거가 있었던 자리이기도 하다. 타이거는 고양이다. 나만 졸졸 따라다녀서 가끔은 고양이 탈을 쓴 강아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허벅지 위로 올라와 꾹꾹이를 해주던 귀여운 녀석이다.     


 귀여운 걸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없겠지만, 귀여운 것에 유독 힘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다. 늘 귀여움의 한도 초과로 허덕인다. 최근에 아주 귀여운 게임 하나를 다운받았다. [고양이는 정말 귀여워]라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나만의 고양이 마을을 만드는 게임인데 조작법이 쉽고 간단해서 누구나 어렵지 않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이런 걸 두고 캐쥬얼 게임이라고 부르는 건가?     


 게임 안에 힐링의 시간이라는 게 있다. 약 7초간 아무것도 누르지 않고 예뻐해 달라고 집사를 호출한 고양이를 지그시 바라보면 된다. 힐링의 시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양이만 본다. 사실상 고정귀(고양이는 정말 귀여워) 자체가 힐링 게임이라고 생각하는데 힐링 게임 안에 힐링의 시간이 따로 분배된 점이 신기하고 재밌다. 고양이 마을엔 큰 사건이 없다. 정해진 시간 내에 해야 하는 미션도 무리가 없는 선이다.      


 자, 이제 게임 밖 이야기를 해보자. 현생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있다면 멍 때리는 시간이다. 말하자면 현생 속 힐링의 시간이라 할 수 있겠다. 사무실 자리가 창가라 햇볕이 잘 들어온다. 업무가 많거나 지칠 땐 창가에 둔 손절이를 약 30초간 쳐다본다. (평소에 너무 자주 보기 때문에 30초가 초과될 수도 있다) 손절이는 독일로 일하러 간 멘탈케어 맨이 가기 전에 선물해주고 간 선인장이다. 9월에 여럿이 함께 묶은 프로젝트 시집이 디자인 이음에서 나왔다. 출간을 기념하며 낭독회를 했는데 그때 멘탈케어 맨은 꽃이 아닌 선인장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고 잘 어울려서 웃겼다. 누가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면 참지 말고, 그냥 손절해 버리라고 이름까지 손수 지어주고 갔다. 근데 선인장도 주인을 닮는 건지. 손절이는 선인장이긴 한데 가시가 무슨 솜털처럼 나 있다. 선인장치곤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모양새다.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손절이 근황을 사진 찍어 보내면서 내가 먹는 물을 손절이와 함께 먹었다고 이야기했더니 선인장한테 사람이 먹는 물을 주면 죽는다고 했다. 물이라고 다 같은 물은 아닌가 보다. 사람이 먹는 물과 식물이 먹는 물은 달라야 하는가 보다. 몰랐는데 무지가 누군가를 아프게 하거나 죽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끼기 때문에 내 것을 함께 나눈 잘못 밖에 없는데 죽을 수도 있다니.     


 사무실은 13층에 있다. 건너편 오피스텔 옥상엔 잔디가 깔려있고, 나무도 심겨 있다. 초록색 방수 페인팅이 칠해지지 않은 몇 안 되는 옥상이다. 손절이 다음으로 자주 그곳을 지그시 바라보는데 가끔 빨래 널러 나온 아주머니를 보고 있으면 사람을 좋아하는 일도 어렵지 않은 일처럼 느껴진다. 저기 누군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아주머니가 내게 해주는 게 없는데도 말이다. 존재가 주는 위안 같은 것을 옥상을 내려다보면서 종종 느낀다.     


 타이거를 오래 곁에 두고 싶었다. 그게 욕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엄마는 타이거를 보자마자 할리우드 액션을 하며 소파로 쓰러졌다. 고양이는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하면서. 엄마 집엔 고양이를 키울 수 없으니 네가 나가거나 고양이를 내보내라는 것이었다. 타이거를 키우기 전까지 고양이는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타이거를 키우고 나서 세상의 모든 고양이가 좋아져 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은 일이 내게도 일어났다.      


 엄마와의 오랜 신경전 끝에 타이거를 엄마 아시는 분께 보냈다. 그날 일이 늦게 끝나서 떠나는 타이거 마지막 모습도 보지 못했다. 밤에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세상 허전했다. 내가 누우면 나를 따라 침대에 누웠던 조그맣고 따뜻한 아이가 이불 밖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아, 사람들이 이래서 반려동물을 키우는구나. 그전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나는 나 하나도 버거운 사람이라 누군가를 돌볼 자격이 없다고 줄곧 생각했다. 돌본다는 건 확실히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 돌봄에는 나도 포함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방적이라 생각했던 돌봄 속에 우리는 하나였고, 타이거도 어느 정도 인내하며 나를 돌보고 있던 셈이다.    

 

 지금은 손절이, 고정귀, 오피스텔 옥상의 돌봄을 받는 중이다. 이것들을 번갈아 지그시 바라보며 하루를 견딘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자주 하는 사람으로서 퇴근길에 이런 생각도 해본다. 누군가에게 나도 그런 사람이지 않을까? 내가 무언가 해주는 건 없지만 단지 여기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딘가에서 버티고 있을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힐링 타임은 하루 중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어떤 것을 자주. 그리고 오래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지 말이다. 



*덧붙임

사람이 먹는 물을 선인장에게 주면 죽는다는 말은 멘탈케어 맨의 선인장 괴담으로 사실로 확인된 바는 없음을 밝혀둡니다. 



게임, 고양이는 정말 귀여워










instagram @ anneya1004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말을 안고 공항으로 향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