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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Mar 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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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부착



개새끼와 씹새끼와 썅년

 

 수정은 KBC 예능국 방송작가 2년 차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프로 <개인적 뉴스>의 일원으로 활약 중이다. 개인적 뉴스는 5년째 KBC를 리드하는 대표 프로그램. 대한민국에서 개인적 뉴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PD 나 명석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MC 브라켄 훈트스마트한 진행 능력과 해박한 지식, 조각 같은 페이스와 늘씬한 기럭지. 방송에서 보이는 완벽한 창조물이 브라켄 훈트이다. 역시 그를 모르는 사람도 없다. 헝가리 태생으로 독일인 아트 디렉터 아버지와 한국인 스타일리스트 어머니의 합작이라고 하기엔 신의 간섭 없이 만들어질 수 없는 외모이다. 그러나 중요한 싸가지가 없다. 신은 이로써 인류에게 공평함을 오차 없이 증명한 셈이다.  지난 일 년, 한류의 붐을 타고 유럽과 남미에서도 폭발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KBC 예능국 5층 회의실에서는 여름 특집 유럽, 남미 편 아이디어 회의가 산을 넘고 있었다. 예능국의 회의란 일견 유머와 아이디어가 넘쳐날 것 같지만 사실은 제작진과 연예인 사의의 살벌한 기 싸움의 격투기장이었다. 대개는 제작진의 판정승으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예인의 투정은 눈두덩이처럼 불어나 스태프들에게 돌아온다. 여기서 가장 만만한 스텝은 스텝 중에서도 최하위 천민층 방송작가, 그 중에서도 막내 유수정이었다. 수정은 오전부터 컨디션에 뭔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예상된 일이었다. 지난밤 숙취 때문일 거로 생각했다. 아까부터 브라켄과 스태프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특히 브라켄. (그래 봐라봐! 내가 좀 예쁘잖니) 수정은 노브라였다. 도톰한 면모달 티셔츠를 입었는데 티가 난다면 나겠지만 크게 신경쓰일 정도는 아니라 생각했다. 노트를 가슴팍까지 끌어 올리고 나서야 색정 브라켄의 시선을 뿌리칠 수 있었다. 

   뭐라도 먹고 싶지 않나? 배고픈데

브라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8년 차 아영과 5년 차 설아, 3년 차 희라의 시선이 일시에 나에게로 왔다. 살벌한 분위기 2 년 차 방송작가 정도의 미소로 답한다.

   뭘 좀 사 올까요? 

지갑을 챙겨 나서는데 

   난 피자! 

브라켄 훈트다. (개새끼)

3년 차 희라가 나선다. 무슨 피자인 줄 알지? 

   파파존스 치폴레 치킨

상냥하게 그리고 센스있게 대답했지만, (너도 썅년)

   노노노! 파파좆은피자.

티가 나는 억지 웃음으로 대답한다.

   네 빅사이즈! (그것도 유머라고 브라켄) 개새끼.

회의실이 순간 얼어붙는다.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지갑을 챙겨 서둘러 방을 나오는데 8년 차 아영이 따라 나온다.

   유수정! 

중지를 세워 이마를 콕 콕 찍으며 주의를 준다.

   너 조심하라 했지? 

이것이 바로 방송작가의 군기라는 것이다. 유독 돈 푼 못 받는 것들끼리 꼭 찾아 먹는 군기라는 게 방송작가 사이에서는 극에 달하고 있다. 수정은 두 손을 뒤로 모으고 고개를 숙여 잘못을 인정하나 양손의 가운뎃손가락은 꼿꼿하게 세웠다. 자존심이었다.

   간식 사 오는 방법 알지?

   

   어떻게?

   1. 개새끼가 좋아하는 걸 파악한다. 

   2. 씹새끼가 싫어하는 걸 파악한다 

   3. 개새끼와 씹새끼가 여럿 있을 때 짠맛 단맛 클래식, 새로 나온 과자 산다. 자비로 산다.

이것은 방송작가 대대로 내려오는 생존전략의 주문이었다. 8년 차 아영은 냉큼 갔다 오라는 위엄 있는 턱짓을 하고 들어간다. 뒷모습에 숨겨뒀던 쌍 퍼큐를 날린다.

   썅년!

 

 

실종

 


 없다! 당연히 있어야 할 그것이 없다. 온종일 견딜 수 없던 찜찜함은 그것이었다. 브라켄 개새끼와 작가 언니 썅년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진정시키려 가슴을 쓸어내리는 동안 항상 손 끈에 걸리던 것이 만져지지 않았다. 수정은 늘어진 에리를 들어 올려 가슴을 확인했다. 없다. 진짜 없다. 28년간 함께 해온 그것이 없어졌다. 젖꼭지! 등판과 앞판을 구별하고 정확히 이 부분이 가슴이라는 포인트를 알려주는 젖꼭지가 없어졌다. 그것도 오른쪽만 사라진 것이다. 다리에 힘이 풀린 수정은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카페로 자리를 옮긴 수정은 라테를 휘저으며 지난밤의 기억을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클럽, 기준이 한기준, 모텔 달 하우스, 그리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라테를 단숨에 마시고 수정은 휴대폰의 검색창을 띄었다. 검색어에 뭐라고 써야 할지 젖꼭... 결국 유두 실종이라고 썼다. 검색된 사이트는 모두가 야한 사이트뿐이었다. 도움이 되지 않았다. 수정은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그러나 딱히 떠오르는 이름은 없었다. 떠오른다 해도 젖꼭지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해야 할지 도무지 말을 고르지 못했다. 난감했다. 혹시 기준이는 알고 있을까? 휴대폰을 만지던 손가락은 단숨에 움직였다. 일단은 전화해보자. 신호가 간다. 신호가 간다. 내 젖꼭지 내가 가지고 있다는 대답을 기대하는 것인가? 라는 물음에 통신 종료를 누른다.

 

 수정은 택시를 세웠다. 일단 모텔로 가보기로 했다. 필름이 끊길 정도로 과음한 것에 대해 밀도 있는 후회가 밀려왔다. 구글 다음 네이버 모든 포털사이트를 검색해봐도 유두가 사라진 것에 대한 질문도 힌트도 없었다. 모텔 달 하우스 종업원에게는 중요한 물건을 놓고 왔다고 대충 둘러댔다. 지난밤의 기억은 없다. 침대, 욕실 화장실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떤 단서도 없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방은 다음 손님을 기다릴 뿐이었다. 거울 앞에 선 수정은 상위를 벗었다. 없다. 유두가 사라진 자리에는 정확히 유두만큼 순도 높은 살색의 아기 같은 피부가 있을 뿐이었다. 다른 한쪽의 유두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봉긋하게 올라와 있다. 수정은 젖꼭지의 용도를 생각해봤다. 모유 수유? 분명 아이를 위해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은 기나긴 인생에 비하면 지극히 일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 순간을 위해 평생 건포도 같이 신경 쓰이는 것을 달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더구나 수영은 철저한 비혼주의자였다. 하지만 있어야 할 게 사라진 것과 처음부터 없던 것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좌우 비대칭. 꿈일지도 몰라. 아마 꿈일 거야. 수정은 좌 우 비 대 칭이라고 천천히 소리를 내며 왼쪽에 남아있는 유두를 힘껏 비틀어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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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 아니 퐁! 하고 떨어졌다. 수정은 놀라 자빠짐을 몸소 실행하며 타란툴라 왕거미를 털어내듯 유두를 털어냈다. 떨어진 유두를 집어 다시 있던 자리에 대어봤다. 착! 달라붙었다. 마치 자석에 끌리듯 자연스럽게 철썩 달라붙는다. 수정은 또 한 번 나자빠졌다. 놀랐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적당한 언어를 생각해봤다. 탈부착! 탈부착이다. 수정은 유두 탈부착이라고 검색어를 입력해봤다. 역시 부질없었다.

 

 수정은 회사로부터의 전화를 무시하고 집으로 왔다. 너희들은 이런 상황에 이런 상황에? 젖꼭지가 탈부착 되는 걸 안 상황에 일이 손에 잡히겠냐? 라고 할 수 없었다. 내가 8년 차, 5년 차, 3년 차 썅년들의 전화를 무시하듯 기준도 내 전화를 무시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단서를 쥐고 있는 것은 기준이었다. 어쩌면 벌써 X파일 같은 정보기관에 신고했을지도 모른다.

수정아! 수정!! 유수정!!!

엄마다. 하필 이럴 때 엄마가 올라와 계신다. 엄마의 잔소리는 끝이 없다. 왜 일찍 들어왔냐? 왜 나가냐? 왜 안 들어왔냐? 아프냐? 밥 먹어라! 씻어라! 정리해라! 도무지 해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엄마! 나 젖 꼭지 한쪽이 없어졌다고! 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화살은 괜히 엄마에게로 향했다. 엄마 이럴 거면 내려가 좀 내려가라고! 했다. 필요 없는 말이었다. 수정은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소리 나게 닫았다. 거울 앞에 서서 왠지 서러움이 복받쳤다. 눈물이 났다. 젖꼭지도 모두 엄마에게 받은 것 아닌가. 잃어버린 주재가 되려 대못을 박는 말이나 하는 자신이 밉고 분했다. 어깨를 들썩하며 큰 소리로 소리 내어 울었다. 눈물을 훔치며 거울에 비친 자신을 애처롭게 바라봤다. 거울에 붙어있는 희미한 무언가가 보였다. 유두 한쪽이었다. 거울 벽면에 진공 압축 걸이처럼 붙어있는 것은 분명히 유두였다. 수정은 그것을 자신의 몸에 붙여봤다 척하고 달라붙는다. 수정은 또 한 번 나자빠졌다.


 침대에 누워 돌아온 유두를 붙였다 떼기를 반복했다. 조금 사이즈가 다른 듯한 유두는 물에 부른 것처럼 흐물거리고 검고 조금 컸다. 뭐라도 생각해보려고 애써봤지만, 뭐라도 생각나지 않았다. 밖에서 분주한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였다. 방문을 들락거리고, 욕실을 들락거린다. 수정은 나가서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수정에게 가슴을 가리키며 요렇게 생긴 것을 보지 못했냐며 욕실에 붙여뒀는데 어디 간 거냐고 혼잣말인 것처럼 중얼거렸다. 수정은 대뜸 찾는 게 혹시 이거냐고 말하지 못했다.

 

 

유전과 전통

 

 엄마와 수정은 마주 앉아 오해를 풀었다. 유두의 탈부착은 엄마 계열의 유전이라는 것이 엄마의 설명이었다. 엄마는 오래전 아빠가 엄마와 만났을 때 아빠가 젖꼭지 하나를 삼켜버렸다고 했다. 그 사실을 안 할머니는 엄마에게 젖꼭지를 나눠주었고 이제 그 하나를 나에게 주었다. 엄마는 말했다. 탈부착도 그다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활하다 보니 지혜가 생겨나더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하고 물으니 중요한 메모나 비상금 같은 것을 유두로 눌러놓고 다니면 절대 잃어버릴 일이 없다는 것이다. 

 뭐야 그거야말로 자석이잖아 하하 하하하핳하하

 편리라니까? 진짜야! 

 이거야말로 우리 가문의 비밀 전통이네! 하하 하하핳하

 그래 맞아 네가 끊어 먹게 생겼지만 말이야 하하 하하핳하

 그럼 나도 다시 생각해볼까 결혼? 

 그래야지 뭐든지 다 좋게좋게 생각하면 지혜가 생기게 돼 있어

그날 밤 엄마와 수정의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수정은 생각했다. 이런 스릴 있는 유전이 끊기는 건 정말 아쉬운 일일 지도 모른다. 몸의 일부를 대대로 물려준다는 것도 낭만이라면 낭만일 것이다. 탈부착이라니 이 편리함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나저나 기준 이시키 내 젖꼭지 먹어버린 건 아닌지. 






죠-타이거

instagram @illruw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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