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불시착 김택수 Sep 10. 2020

남기고 싶은 유산



 극장을 안 가지 오래다. 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 시간에 잠이나 더 자고 싶었던) 가족과 알라딘 실사영화를 본 게 마지막이다. 연우를 위한 이벤트였다.  어느순간 부터 극장은 점점 멀어졌다.  난 한때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의 꿈을 가질 정도로 영화광이기도 했다. 헐리우드 배우들의 이름을 외우고 영화를 두루두루 보고 이선영의 영화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주류가 된 씨네 21, kino와 같은 영화 잡지도 이전  그보다 훨씬 오래된 스크린이나 로드쇼 같은 잡지를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나는 복잡한 서울 지리를 대형영화관의 위치로 외웠다.  집에서 가까운 충무로와 명동 코스에는 대한극장을 나와 스카라 명보 국도 중앙이 있었고 종로2가에서 출발해 허리우드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의 종로3가까지 모두 걸음으로 외웠다. UIP직배가 커다란 잇슈일 때 어느 극장 안에 뱀을 풀어놓은 사건도 있었다. 그즈음 직배영화사에서는 큰 극장을 피해 중소형 재개봉관에서 상영하는 바람에 나의 서울 극장 자리 네비게이션은 또 한 번 광폭 성장하게 되었다. 남양동이라는 곳을 처음 가봤고 서대문의 대지극장 화양극장과 중화동의 새서울극장까지 나만의 서울형 극장지도가 완성됐었다. 


 지금은 거의 보지 않는 신문이지만 90년대 신문이라면 거르지 않고 필독하는 지면은 티비채널란과 영화광고란이었다. 그중 특히 좋아했던 것이 극장 광고면이었다.  지금은 영화 트레일러로 유튜브와 같은 매체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당시 지면 광고의 빈티지한 매력은 압권이었다. 네이버에서 신문을 복원하는 사업을 진행 중인데 그 시대의 영화 광고란의 구석구석을 살피는 것은 은근 재미가 쏠쏠하다. 스크랩의 욕심이 발동해 화면캡처 키보드가 바빴다. 



 사라진 극장 문화가 못 내 안타까운 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영수증처럼 발행되는 티켓은 영화 감성을 무자비하게 말살해 버렸다고 주장하고 싶다. 영화관과 학교 앞, 사람이 몰리는 곳에서 배포하던 영화 카드가 사라진 것도 못 내 아쉽다. 손바닥만 한 영화 카드는 그야말로 영화 굿즈의 원조 격으로 뒷면에는 캘린더, 지하철 노선도와 영화 상영 시간이 나와 있다. 특히 새 서울극장의 영화 카드는 독보적으로 제작되어 명성을 얻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에게는 수백 장의 카드가 있었는데 영화 카드를 방바닥에  펼쳐두고 좋아하는 배우가 나온 것과 디자인이 좋은 것을 마음대로 랭킹을 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백 투 더 퓨쳐와 인디아나 존스는 가장 좋아했던 영화로 분류했고 칵테일 탑건 코브라 오버더 톱 같은 잘생긴 톱스타의 카드, 성룡을 대표하는 중화권 스타들의 카드로 분류했다. 그리고 스프레쉬나 블루 라군 같은 여성의 몸매가 드러나는 카드를 특별관리하기도 했었다. 영화 카드를 수집하는 취미는 나 말고도 여럿 있었는데 희귀본 카드를 구하면 과시도 했고 남이 그런 카드를 자랑하면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서로의 카드를 교환하기도 했는데 이 친구들은 대개 공부라든가 연애라든가 깡패 놀이라든가 하는 일반적 세계관으로는 감 잡을 수 없는 부류들이었다. 



 얼마 전 프로파간다에서 90년대 영화 카드 대전집이라는 아카이브 북을 30,000원이라는 고가로 선보였다. 얼핏 만 봐도 추억이 새록새록 해진다. 지금 어디에 두었는지, 버렸는지조차도 기억이 없는 물건이다. 어머니는 나에게 그런 건 모았다가 뭐에 쓰냐며 핀잔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 핀잔을 견디며 묵묵히 모았던 영화 카드를 모았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독립출판 시장의 미래를 엿보았던 건 아니었을까.




illruwa2

instagram @illruwa2 

매거진의 이전글 즉시 부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