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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Sep 08. 2020

즉시 부자


 신혼집은 원당이었다. 원당은 지하철 3호선의 끝자락이었고, 어머니 집은 일원동으로 원당 반대편의 끝자락이었다. 우리 부부는 일원동에 갈 경우 지하철 3호선을 이용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든다. 시간은 견딜만하다. 그러나 지루한 건 힘들었다. 3호선과 6호선은 교차 역이 2번 있다. 연신내와 약수역이다. 우리는 일부러 6호선을 환승해 다시 3호선으로 돌아오는 바보 같은 선택도 했었다. 시간이 더 들고 귀찮았다. 원당과 일원은 그만큼 길었다. 정류장 32개를 지나야 하는 거리였다. 지금 1시간 거리라면 SNS를 하거나 스마트폰을 보며 시간을 접어가는 것처럼 이동할 수 있으나 당시는 스마트 폰도 LTE도 없었다. 꽤 긴긴 여정이고 각오가 필요했다.


 한번은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편의점에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문고 책을 샀다. 책은 <부자가 되는 100가지 방법> 이었다. 나는 처세나 활용서 특히 뭐 뭐해라 하는 식의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싫은 것보다 심심함을 견뎌야 하는 문제가 더 컸다. 책은 재미있었다. 집에 물이 막히면 우환이 생긴다. 우환은 큰 돈을 내야하는 법이다. 바람이 드는 곳은 청결해야 한다. 돈을 잘 써야 돈이 들어온다. 돈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깨끗하게 보관해야 한다. 주머니 속 꼬깃꼬깃한 돈을 가진 자는 딱 그만큼의 돈만 안다. 지갑은 격이 있어야 한다. 돈은 격을 안다. 좋은 지갑을 써라. 지갑에는 씨 돈이 있어야 한다. 씨 돈은 절대 쓰지 말아라. 씨 돈은 돈을 부른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등등의 이유있는 부의 매뉴얼에 탄복하며 읽었다. 페이지는 술술 넘어간다. 나는 격언 같은 제목이 나올 때마다 와이프를 바라보며 이렇대 저렇대 이야기를 토했다. 책의 내용대로라면 나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었다. 작가는 나를 철저하게 리서치해 책을 완성한 것처럼 보였다.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그리고, 완고하게 너는 아니야라고 했다. 반면 와이프는 나와 달랐다. 아무리 갖고 필요한 물건이라도 지갑이 비게 되면 참는다고 한다. 청결은 몸에 배어있고 주머니나 테이블 위에 돈을 굴리는 일은 볼 수 없다. 지갑은 이모로 부터 받은 유명 브랜드를 쓰고 있다. 와이프는 언제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사를 결정하거나 차를 사는 일에도 거액이 드는 일에는 모두 와이프의 프로젝트이다. 그릇이 다르다는 건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와이프는 부가 어울리는 사람이다. 사업을 시작하고 돈이 모이기 시작할 때가 있었다. 이른바 전성기였다. 그때는 와이프의 세심한 설정으로 주머니에 돈을 구겨 넣지 않는 것부터 꽤 좋은 지갑을 구입해 사용하기도 했다. 돈이 모이는 듯했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공과금과 융자금 교육비와 생활비를 월 수로 감당할 수가 없다. 언제부턴지 난 돈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지갑은 어디에 두었는지 모른다. 이 책이 틀리다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책이 다 맞는다고 할 수도 없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그릇에 적당히 물을 담고 산다. 넘치면 나눌 수 있고 부족하면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부자가 되는 법보다 부자가 해야 할 행동이라는 책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배를 건조하고 싶으면 사람들에게 나무를 모아오고 연장을 준비하라고 하는 대신 그들에게 끝없는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켜라. 생텍페리는 말했다. 부자가 되는 방법은 이 말과 다르지 않다. 부자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무엇보다는 부자의 마음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열하일기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은 도강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족을 알면 위태롭지 않은 법이다" 이것이 지금 즉시 부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까.










김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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