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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Sep 06. 2020

손뜨개 가방

퇴근후책방



며칠 전 엄마가 안방을 한바탕 뒤집어 정리를 하셨다. 입지 않는 옷가지들, 가방, 악세서리 등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안방이라 거의 아빠와 엄마 물건이 많았지만 다른 식구들 물건도 있었다. 


내 물건은 거의 없었는데 장 속에서 몇 년 동안이나 잊고 있던 물건이 하나 발굴(?) 되었다. 베이지색 손뜨개 가방이었다. 직접 만든 것인데 시작은 내가 하고 완성은 엄마가 하셨다. 


직접 만든 손뜨개 옷이나 가방이 유행하는 때가 있다. 유행은 돌고 돈다. 내가 어렸을 때도, 언니들이 어렸을 때도 손재주가 좋은 엄마는 일본 잡지를 보면서 스웨터, 목도리, 모자, 가방 등을 만들어주셨다. 가끔 길을 가다 보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나를 불러 세워서 "엄마가 실력이 좋으시구나" 하면서 나를 앞뒤로 돌려가며 살폈다. 뜨개질 패턴을 보며 눈으로 익히는 것이다. 어린 내 눈에는 니트 스웨터가 왠지 할머니 옷 같아 보여서 그리 즐겨 입지는 않았다. 


중학교 때 가정 시간에 뜨개질 실습이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 직접 뜨개질을 해보았다. 뭐든지 힘주어 열심히 하는 나는 뜨개질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금세 싫증이 나서 던져두었다. 반의 반 정도 완성된 목도리를 본 엄마는 "너무 세게 당겨서 촘촘하게 짜니까 힘들지" 하면서 내가 짜놓은 실을 다 풀어내더니 성기지만 일정하게 짜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내가 만들었던 길이를 넘어서고 그 자리에서 꽤 길고, 포근한 목도리가 뚝딱 완성되었다.


이번에 발견된 손뜨개 가방은 무슨 바람이 불었었는지, 내가 직접 짜보겠다고 했었다. 직접 디자인을 구상해서 그림을 그렸다. 엄마도 오랜만에 뭔가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셔서 역시 내가 직접 디자인한 모자를 뜨기로 했다. 동대문 시장에 가서 실과 바늘, 단추, 모자 방울을 샀다. 


엄마의 회색 모자는 진도가 쭉쭉 나가서 금세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고, 내가 직접 써보고 디자인을 약간 수정한 후 안 입는 옷의 회색 단추와 방울을 달아 완성했다. 


내 베이지색 가방은… 가방의 밑바닥 부분을 만든 이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밑바닥은 튼튼하게 무게를 지탱해야 하니 힘주어 촘촘하게 뜨는 내 방식이 적합했지만 몸통 부분은 일정한 힘으로 무늬를 넣으며 만들어야 하는데 잘 안돼서 다시 풀기를 반복했다. 나는 또 싫증이 났고 결국 엄마가 완성했다. 단추를 끼우는 부분은 촘촘하게 떠야해서 내가 맡았다. 


그렇게 내가 만들었다고는 할 수 없는, 애매하게 내 지분이 들어간 가방은 한두번 매고는 옷장속 깊숙한 곳에 들어갔다. 그러다 거의 5, 6년만에 다시 발견된 것이다. 


엄마는 안 맬거면 버리라는데 나는 왠지 반가운 마음이 들어 챙겨두고 당장 다음 날 외출할 때 맸다. 

지금 뜨개 가방이 유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상관은 없을 것 같다. 어두운 밤색 원피스와 제법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썩 맘에 들었다. 

디자인도 내가 했지만 팔이 긴 내 체형에 맞게 어깨끈을 길게 만들어 다른 사람이 쓴다면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퇴근후책방

인스타 @afterwork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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