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묘는 재밌다. 그곳은 좀 다른 세상이다. 우선 사람이 많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동묘에 왔는지 알기 어렵다. 물건을 사기 위해서도 아닌 것 같고, 팔기 위해서는 더욱더 아닌 것 같다. 대부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다. 특징은 바다의 부유물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이다. 매일 오는 것 같고, 매일 다른 사람들이 오는 것 같다. 그러나 한 번 간 사람도, 매일 가는 사람도 동묘에만 있을 것 같고, 동묘에 어울릴 것 같은 동묘인이 돼버린다. 동묘에는 그 많은 사람보다 더 많은 물건이 있다. 난 동묘의 어느 가게에서 전투기의 조종석의 뚜껑을 본 적이 있다. 이런 건 누가 사냐고 물었다. 사장님은 영화 소품팀이 단골로 온다고 했다. 그리고 영화배우 최민수도 단골이라 했다. 우리 집 침대 위에서 전투기 뚜껑을 덥고 자는 상상을 했다. 가격이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못했던 것은 조금 후회된다. 조금 더 걷다 보면 골목마다 좌판을 깔아두고 그 위에 옷과 비디오, 손목시계, 카세트테이프와 오래된 휴대 전화기의 받데리와 어댑터들이 엉켜있다. 특히 옷을 파는 매대는 남녀의 속옷과 오리털 톱바, 야상, 등산복과 패딩 스포츠용품과 짝퉁명품이 마구 뒤엉켜있다. 그곳엔 규칙도 룰도 없다. 구름처럼 많은 사람이 그 옷들처럼 섞여 옷을 뒤적거린다. 마치 월척을 만날 것 같은 기대에 찬 바쁜 손놀림을 하지만, 얼굴만은 공통으로 표정이 없는 것이 이곳 동묘인의 특징 중 하나이다. 나는 아이스하키의 어깨보호장비와 NHL하키 유니폼을 손에 들고 고민을 거듭했다. 만 원이었으나 감언이설의 물욕 신을 뿌리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조금 더 걷는다. 이번엔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빈티지한 회중시계, 전자시계, 캐릭터시계, 조그마한 알람시계부터 대형 벽걸이 시계까지 온 god 종류의 시계가 모여있다. 그 시계 무덤 속에서 하나의 시계를 발견했다. 알이 크고 두꺼웠다. 유리에 흠집이 많고, 실버 메탈을 무색하도록 깊게 펜 흠집이 마구 섞여 있었다. 크로노그래프 특유의 복잡한 숫자판을 가진 시계는 유명한 항공 시계 브라이틀링의 벤틀리였다. 난 그 시계가 무척이나 탐이나 가격을 물어보았다. 새치가 많고 며칠은 안 씻은 느낌의 주인은 3만 원 후반대를 불렀다. 해 볼 만 하다고 생각했다. 프리미에르 B01 크로노그래프 42 벤틀리 100주년 리미티드 에디션은 가격이 무려 35,640,000원에 이른다. 그런 고가의 명품 시계가 이곳 동묘에서는 3만 원 후반대의 가격으로 책정되어있다. 난 문득 이런 물건은 어떻게 이곳까지 불시착했으며 가격은 어떻게 책정되는지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졌다. 3만 원은 나에게 아직도 어쩌면 영원히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흠집투성이의 짝퉁 시계를 현실감 있는 거금 3만 원을 쓸 수 없었다. 물욕 신은 다시 한번 고배를 마셨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생각에 잠긴다.
만약 벤틀리가 진품이었다면.
런던의 밤, 본드 스트리트를 배회하던 쌍둥이 형제는 환각제를 주입한 후 명품 숍 브라이틀링의 매장앞에서 100주년 에디션 제품으로 특별 전시된 프리미에르 B01 크로노그래프 42를 보고 흥분한다. 동생은 소화기를 들어 유리창을 부순다. 형이 말릴 수 없는 순식간의 일이다. 요란한 경보음이 밤의 런던을 깨우고 곧이어 경찰의 사이렌이 도시를 가른다. 형제는 벤틀리를 들고 미칠 듯 달린다. 경찰을 따돌릴 때 숨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잠시 쉴 겨를도 없이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둘은 시계를 번쩍 들고 환호성을 지르며 도로를 가로질렀다. 환호성은 화물차의 스피드 마크 끝에서 사라진다. 동생의 손에서 떨어져 나온 시계는 사고 현장에서 500m 먼 거리까지 튕겨 나간다. 통통 튀기며 정지한 벤틀리는 작별파티를 끝내고 택시를 기다리는 한국 유학생 현석의 구두 끝에서 멈춘다. 다음날 현석은 굴러온 벤틀리를 들고 서울로 돌아왔다. 6년만이었다.
상상은 여기까지.
다음날 난 또다시 동묘로 향했다, 어제 그 자리에 가서 벤틀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한 번 손절한 상품은 다시 만날 수 없다. 이곳 동묘의 마지막 특징이다. 새치가 많고 며칠은 안 씻은 느낌의 주인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혹은, 동묘에 있는 사람 모두가 그런 인상이어서 옆에 두고도 몰라 봤을 가능성도 제로는 아니었다.
김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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