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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Sep 04. 2020

시간은 충분하다


 소공동 롯데 호텔은 회사의 창립 기념일이라든가 바이어의 어텐드를 위해서 몇 번 간 적이 있다. 난 기본적으로 호텔의 격조를 좋아하는 편이다. 자본주의의 계층 구조에 대해 토를 달거나 불만을 내색하지도 않는다. 바이어를 객실로 안내하고 난 후, 피로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몰려들어 호텔 로비의 소파에 자리를 잡는다. 약간의 허세를 담아 쉬어보기로 한다. 그러다 보면 그 허세가 물이 차올라 이른바 상류사회의 허례를 관찰하기도 하는데 그 허례를 놓치지 않는 상술의 귀재가 호텔이기도 하다.  호텔의 로비에는 호사스럽지 않게 차이를 내며, 눈에 띄지 않게 존재를 나타네는 명품 중의 명품 매장이 있었다. 그 중 유난히 턱이 높아 보였던 브랜드가 하나 있다. 바로 브라이틀링 이었다.

 

 매장은 흔하디흔한 명품 브랜드와는 다른 존재감이 있었다. 로렉스라든가하는 고급시계는 다이아몬드 몇 개를 박아 시가 천 만원을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브라이틀링의 항공시계는 다이야 하나 없이도 천만원을 웃돌았다. 추석이나 설날과 같은 민족 큰 명절이면 떠돌아다니던 금강제화의 상품권은 비교적 흔했다. 그 상품권에 부담스러운 웃돈을 얹어 구입한 10만 원 중반대의 단벌 구두가 나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개똥 명품이었다. 그에 반해 광준의 생활명품을 읽고 난 후유증으로, 허영의 최고 존엄인 시계 브랜드 브라이틀링을 알게되었다. 눈과 마음은 매장의 두껍고 투명한 유리를 통과해 있었다. 그러나 금강제화만은 현실을 인지하고 매장의 통유리 밖에서 신분을 유지에 힘쓰고 있었다. 윤광준은 책에서 아버지의 유품을 이야기했다.


 여성 사진가 수전 파이퍼는 아버지의 유품인 ‘네비타이머’를 차고 있었다. 커다란 문자판에 복잡하게 들어찬 고도계와 타이머 기능은 한눈에 보기에도 선수의 물건 같았다. 예쁘장한 얼굴에 자그마한 체구를 지닌 그녀는 멀리서 보면 브라이틀링 시계만 들어왔다.


 난 아버지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너무 청렴해서 가진 게 없으셨다. 새벽에 나가시고 점심이 조금 지나 들어오시던 아버지의 손에는 대파와 부추, 마늘 같은 것이 들려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물건이 있었는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뭐하나 있었으면 한다고 말해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어떤 이유인들 아버지를 원망하기에는 철이없다. 그래도 아버지가 남겨주신 카메라라든가, 라이터, 만년필이나 시계 같은 것이 있었더라면 좋은 드라마가 아니겠는가 싶기도 하다. 


 브라이틀링에 홀려 침을 흘려가며 시계를 기웃거릴 때 결국 하나의 시계를 장만하고 말았다. 이것은 나의 의지보다 아내의 의지가 더 컸기에 가능한 가격의 시계였다. 갖고 싶으면서도 큰 금액에 가벼이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아내는 알았을 것이다. 독수리가 그려진 엠포리오 아르마니였다. 브라이틀링의 케이스 정도의 가격일지도 모르지만 블랙 메탈에 제법 무게감이 있다. 명품 시계 족보에서는 흔해 빠진 크로노그래프 시계이지만, 크로노그래프 시계가 흔한 이유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항공 시계라든가 다이버 시계라는 이유로 생명과 밀접한 시간 계측에는 정확도가 최우선이어야만 한다. 그런 면에서 기계적 무브먼트는 전자식을 압도한다. 스위스 무브먼트는 전통의 기술력으로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전통이 디자인된 제품의 가치가 명품 시계가 된다. 엠포리오 아르마니는 매장의 직원이 진회색의 벨벳 장갑을 끼고 건네주는 시스템의 브랜드였다. 이로써 내 몸에 가장 비싼 물체가 생긴 셈이다. 나는 그것을 애지중지 다루지 않았다. 지금은 흠집이 심하게 많고 체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물때도 적지 않을 것이다. 2년 전엔가 유리 교체란 특단의 서비스를 받기도 했다. 보름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값비싼 자본주의의 서비스를 받고 돌아 온 시계는 거의 새 상품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채 지나지도 않아 유리의 흠집은 서비스 이전상태보다 험악하게 되어 버렸다. 어차피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 손목을 들여다보는 일은 많지 않다.  성향이 그런지 모르겠으나 시간을 잘 확인 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성향만은 가족 공통이라 우리 집에는 시계의 부재가 드러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시계는 이제 생활 편의 목록이 아니다. 몸의 부품과도 같아 왼쪽 손목에 시계를 해야만 몸의 발란스가 맞는 기분이 든다. 그것 말고도 이 시계를 부지런히 차고 다니는 이유가 하나 있다. 사진가 수잔 파이퍼처럼 아버지의 유품을 차고 다니는 연우 세계의 밑 작업을 그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로 나는 언제나 연우에게 긍정적인 아빠가 될 수 있도록 살아야 하겠다. 시계 하나가 만들어 가는 스토리텔링이 결코 가볍지 않다. 


 돌이켜 보면 아버지는 나에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은 것이 아니다. 부족하다 싶을 정도의 물욕을 남겨주셨다. 그 정도의 물욕으로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기억을 거슬러 일본으로 건너갈 무렵일 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주신 만 원짜리 한 장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 주신 돈이 아니었고, 어떤 의미가 있어서 쓰지 않고 보관한 것도 아니다. 당시에는 그다지 돈을 쓸 일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돈을 쓸 타이밍을 놓쳤다고 생각된다. 일본어 공부에 한참이던 때였다. 닳고 닳은 일본어 사전 사이에 빳빳한 만 원 한 장이 그대로 있다. 아버지가 주신 만원이 어떻게 수전 파이퍼도 부러 할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도 나에게도 시간은 충분하다. 




김택수

instagram @illruw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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