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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Sep 04. 2020

우주론과 스파크

by 승민

 밤중에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어 머릿속으로 글을 적었다. 웃긴 건 의자를 끌어 내 방의 식탁 앞에 앉자마자 그게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머릿속엔 온통 방금 나를 스쳐간 다른 무언가 뿐이었다. 닫힌 문에 꺼진 불, 하나의 벽을 통째로 뚫어놓은 창을 열고 나는 창의 난간에 비스듬히 몸을 내밀어 먼 곳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늘은 아무것도 없어 깜깜. 불현듯 아무 것도 없는 한 켠에서 불 하나가 타오르며 질주하고 툭 끊기 듯 사라졌다. 종이로 기차의 선로를 잘라낸 듯 툭. 뭐지? 방금 뭐였지? 어릴 적 시골집으로 잘못 날아든 반딧불이의 엉덩이불만큼 순수한 빛이었다. 나는 유성을 본 적이 없지만 어쩌면 내가 최초로 목격한 유성일 수도 있다. 오늘 날짜에 어떤 우주의 소식이 있나 검색해보려다 곧 관둔다. 믿고 싶은 데로 믿자는 마음이다. 타오르던 그것은 무신론자인 나에게 어떤 신앙심마저 떠오르게 하였고, 기분이 묘했다. 


 난 요즘 현재의 내가 어떤 상태인지 자각해야 한다는 걸 안다. 그 상태란 얼만큼의 방황과 얼만큼의 무기력 얼만큼의 나태인지를 말한다. 어떠한 스파크를 느껴본 지가 오래되었다. 몸 안에서 튀어오르는 스파크, 나는 글을 적는 일은 굵게든 얇게든 지켜내야 할 나라는 캔들의 중앙 심지라고 생각한다. 올곧지 못해도 어쩔 수 없는 삶의 척추이다.

 

 언젠가 꽤 동경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 차이는 좀 나지만 글이나 문학, 일상적으론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가치관 같은 것들을 나눌 수 있어서 대화하기에 아주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대화를 ‘나눈’ 것인진 모르겠다. 타인이란 모르는 법이니까. 내 말이 어디까지 닿았을진 알 수도 없고 기대도 불가능한 것이다. 아무튼, 그 사람은 글을 적을 때 자신의 글을 읽고 있을 특정 대상을 떠올리며 적는다고 말했다. 그 대상에게 글을 보여줄 생각을 하며 적는다고. 일종의 자세를 바로잡는 것이다. 나는 당시 그에 대한 동경에 들떠 있을 때였기에 완전히 감탄하면서 수긍했다. 일기보단 편지가 외롭지 않은 법이니까. 이후로, 언젠가부터, 나는 내 글을 읽고 있을 특정 대상-가공 인물을 꽤 구체적으로 만들어뒀다. 하지만 어째서 점점 솔직해지지 못하는 건 왜일까? 가공 인물은 말 그대로 가공일 뿐인데. 솔직하기 위해선 투명하게 스스로를 알아야 할 터인데, 그것부터가 어렵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나 자신을 유추할 지식을 쌓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스스로에 대한 무지는 삶에 대한 무력과 삶을 살아갈 동기를 동시에 부여한다. 삶의 생기는 어디에 있을까?


 우주란 결국 끝없는 고독이라고 한다. 이런 말을 누가 했었더라? 잘 모르겠지만, 그냥, 우주란, 전체의 세계에서 나 자신을 뺀 전부에 수렴하는 것 같다. 나 빼고 다. 그렇다고 나 하나 빠진다고 하여 이곳엔 구멍조차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오늘 하늘은 검고 구름이 안개처럼 퍼져서 저기 높은 곳에 드리우고 있다. 너무 높아 보이지 않지만 알 수 있다. 어릴 땐(아직도 어리지만) 종종 하늘이 금빛으로 가득하다고, 혹은 전체가 금빛 그 자체라고 상상하며 그렇게 보고 싶어 밤하늘을 응시했다. 저곳이 그렇게 넓다는데, 별이든 뭐든 켜켜이 쌓여있다면, 그게 전부 보인다면,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by 승민

instagram @seungm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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