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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Sep 13. 2020

언젠가의 다음날

 9월 언젠가 였다.

 코로나라는 이유로 사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손님이 없었다. 가게를 오픈하고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책방 매출 0원, 카페 매출 0원 그때 손님이 한 명 왔다. 손님은 오래오래 책을 골랐다. 책을 오래 보는 손님은 대개 책을 사 간다. 그런데 가끔 그냥 나가시는 분도 있다. 그럴 땐 정말 살만한 책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살짝 야속함과 미안함, 자책감도 부대찌개의 햄과 사리처럼 잡념 속에 뒤섞여 부글부글 끓어오르기도 한다. 그 손님은 에밀리 디킨슨과 수영 일기를 계산하고 가셨다.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얼마만의 에밀리 디킨슨인가. 수영일 긴가. 생각하며 마침 그날 아침 새로 디 피한 책들이었다. 역시 디피가 문제 일지도 모른다며 다른 책들도 둘러보았다. 책방은 한정된 공간이라는 핑계를 내세우기가 일수이다. 두서없고 마구잡이 식의 진열이 가끔 짜증이 났다. 책의 진열 방식을 굳이 논하자면 비논리적이다. 섹션이 나눠져있지 않고, 내가 만든 책 우선이며 지인 특권이 발동된 책들이 먼저이다. 



 9월 언젠가의 다음날

 책, 책은 정말 바퀴벌레처럼 늘어난다. 지금 읽고 있는 책 한 권에만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내 주변엔 항상 책이 많다. 며 칠이 건 주변에 쌓아두는 책들이다. 어느 순간 책이 너무 쌓여 책상의 공간 확보가 곤란하다 싶을 때가 되면 스템플러의 이빨처럼 단호해진다. 책상 위의 책들을 모두 싸잡아 보이지 않는 곳에 처박아 둔다. 그러나 그것들의 봉인은 해제되고 다시 책상 위에 눌러앉아 친구를 부를 것이다.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책상은 정리됐다. 다음날이면 또다시 책상 위에 책들은 하나둘씩 모인다. 책방은 이런 날들을 반복하는 것이다. 날이 차가워졌다. 새로운 계절이 됐다는 뜻이다. 





지구불시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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