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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Sep 15. 2020

애장품

by 수연

아침에 동네 산을 가는데 풍경이 변해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뒤 마을은 다 모랫빛으로 헐렸다. 공사중이라서 100원짜리 만두를 사먹던 문방구쪽은 갈 수 없다. 영어학원을 다니던 주택가는 4000세대의 아파트단지가 들어왔다. 고등학생 때 친구랑 헤어지기 싫어서 어슬렁거리던 골목도 아파트가 생긴다고 한다. 어린 나에게 엄마는 골목 골목 다니지 말라고 했다. 우리 동네는 왠만하면 가지 말라고 하는 길이 많았다. 꽤 험악했고, 영화에 범죄현장이나 달동네로 몇 번 나왔다. 어른이 되어 이 쪽에 처음 와보는 사람들도 어쩐지 으스스하다고 하곤 했다. 그에 비해 지금 이 마을은 참 깔끔해지고 있다. 모랫빛에서 은빛이 되어가고 있다. 동네 사람들도 흐름에 맞게 많이 바뀌고 있다. 유난히 맑은 아침에 마주하는 이 풍경은 tv 같았다. 이 동네가 맑은 것도 이상하고 도시같아지는 것도 이상했다. 나는 우리 동네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 다니지 말라고 하는 길이 많아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울 안전하고 좋다는 어느 곳을 가도 안정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으스스하다는 우리 동네만큼 안전한 곳이 없는 듯했다. 우리 동네는 앞으로 훨씬 더 안전해질테지만, 은빛 바람도 더 쌀쌀해질 것 같다.


저녁 집에 오는 길에는 유튜브로 음악을 들었다. 조금 듣다가 말았다. 다이어리 두 장을 빼곡히 채울 정도의 좋아하는 음악들이 뭐였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 아니면 그 음악이 이제 좋게 들리지 않는걸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 mp3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미키마우스 mp3부터 아이팟, 아이리버가 인기였는데 그 중 나는 액정이 있는 아이리버 mp3를 갖게 되었다. 손가락 3개정도를 붙여놓은 크기의 아담한 아이였고 실리콘 옷을 입혔다. 인터넷에서 테마를 다운받아서 초록색 일러스트로 무장하였고, 장애물 넘는 게임도 할 수 있었고 영상도 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외워놨다가 집에 와서 mp3파일로 변환하여 다운 받고 밤새 듣는 게 행복했다. 그 mp3 플레이어가 내 마음을 너무 부유하게 만들어서, 엄마에게 너무 감사해 눈물이 났던 때가 있었다. 소중한 물건들이 많고, 많았지만 그 mp3는 꼭 찾고 싶어진다. 비밀번호 분실 시 질문에 내 1호 보물은? 의 답이었던 물건이다. 


mp3플레이어는 핸드폰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폴더폰은 터치폰이, 터치폰은 스마트폰이 되었다. mp3 파일이란 확장자는 쓸모가 없어졌고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이제는 유튜브로 음악을 듣는다. 요즘은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주는 유튜버가 많다. 그의 음악이 나의 음악이고 그의 추억은 내 추억으로 조작되던 과정에 우리 동네를 보며 내 기억을 떠올렸다. 동네가 좋아지니 산책을 가고 싶지 않아졌다. 음악 듣기가 편해지니 음악에 별로 애정이 없다. 가끔은 따라가기가 버거워 이 속도를 늦춰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by 수연

instagram @yoridogjorip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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