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
그림 그리는 일로, 글 쓰는 일로 돈을 벌고 있다. 금액이 크던 작던 맹렬한 스피드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돈의 속성 아닐까? 최근에 일어나는 현상은 모두 신기루에 가깝다. 200자 원고지 80매의 청탁은 내용이 아니라 얼마를 받을 수 있는가였다. 내가 작업 중인 그림은 증발하는 돈으로 바뀔뿐이다. 융자라던가, 고지서같은 것들이 아내에게 발톱을 세운다. 아내의 무거운 한숨이 무쇠덩어리가 되어 방안을 굴러 다닌다. 그럼 난 서둘러 집을 나온다. 책방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그림을 그리다가 지나간 사진을 보다가 유튜브를 보다가.... 매일 똑같은 일을 한다. 태양의 기울어지는 경로를 보다가, 서가의 먼지를 털어내다가, 커피를 마신다. 책방의 일상에 파격이란 없다. 몬스테라에 새잎이 나온 정도가 오늘의 파격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현근이가 오지 않는 날도 파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방에는 모든 걸 흡수하는 작고 컴컴한 보이지 않는 구덩이가 나타나곤 한다. 구덩이는 나의 껍데기만 남긴체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모든 것. 나의 모든, 안전, 평화, 계획, 희망같은 모호한 것과 주머니 속의 만 원짜리 하나와 천 원짜리 몇 장, 쓰려고 하면 사라지는 볼펜, 테이프, 자와 노트, 이런 구체적인 것까지도 사라져 버린다. 잃어버린 것을 굳이 찾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무엇을 잃어버려도 찾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는 것을 최근의 무수한 현상으로 인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채워지지 않는 보상이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오늘은 질문이 너무 많아서 사라지고 싶은 날이다. 저 구덩이는 잔인할 정도로 몸뚱이만 외면한다. 몸은 노동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은 받아들인다 노동의 꿈을. 꾸물거리는 노동을. 그 허무함을 견뎌야한다. 나도 슬슬 일어나 보기로 한다. 꿈틀대는 구덩이의 반대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해 저문 공릉동의 골목을 걸었다. 거리는 어둠과 빛이 반반씩 섞여있었다. 곳곳에 그림자가 뭉쳐있고 나는 그곳을 지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빛이 가르치는 방향으로 걸었다. 그림자는 멀어져 갔다가 다가온다. 나는 밝은 곳으로만 걸을 수가 없었다. 골목을 지나갈 때마다 빛과 그림자가 스쳤다. 나아가는 길과 지나가는 길은 이란성쌍둥이일지도 모른다. 하늘과 땅처럼, 콘크리트 아파트와 기와가 내려앉은 단독 주택처럼. 모두 커다란 의미에서 외로워 보였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손님이 거의 없는 카페만 여러 곳 보였다. 별은 보이지 않고 적당한 바람만 있었다. 나는 바람이 등을 밀면 그대로 밀려 걸었다가. 바람이 멈추면 걸음을 멈췄다. 나를 떠받치고 누워있는 구덩이 같던 검은 그림자를 한참 동안 내려다봤다.
by 택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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