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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Jan 15. 2024

주머니 속의 장르 16

어떤 일이든 좋은 일

이사 후 첫 번째 월세를 내는 날입니다. 오늘은 어떤 일이든 좋은 일 하나 하려고 합니다.

지구불시착은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요. 오전에는 2만 3천 퍼센트 손님이 없지만 습관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되도록 아침에 부지런하려고 합니다. 오랜만에 사우나에 갔다 왔어요. 대중목욕탕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편이지만 뜨거운 물 좋아해요. 탕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해봤어요. 어떤 굿즈를 만들지, 음료를 어떻게 시작할지, 책방이 조금 밝았으면 좋겠다,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최근에 읽은 책 <스토너>와 오늘부터 읽을 책 <프랑켄슈타인>에 대해, 오늘은 누구에게 연락해야겠다 등 정답보다 질문을 즐겨봤습니다. 30분이 지날 때쯤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서둘러 나왔어요. 협소한 책방을 조금이라도 넓힐 수 있는 아이디어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책방을 열고 열탕에서 그려본 대로 해보니 훨씬 좋아진 것 같습니다. 부담스럽지 않게 통로를 오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전구를 하니 더 연결하니 실내도 한 층 밝아졌습니다. 책방은 점점 정리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아내는 돈 걱정을 하면서 냉장고가 필요하다며 거금을 들일 생각을 해요. 나는 난방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죠. 아무튼 냉장고는 필요하니 냉장고가 들어오면 또 책방의 배치는 바뀌겠죠.


오늘 날씨는 이상해요. 시각적으로는 따뜻한데 체감적으로는 냉기가 차있어요. 손가락 끝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죠. 히터의 온도를 최상으로 하고 끌어 안나 싶을 정도였죠. 곧 부가세 신고도 해야 하는데, 월세에다 전기세까지 걱정입니다.


2시가 되면 책방으로 빛이 들어옵니다. 책방이 가장 아름다워지는 시간이죠. 책방은 남향이지만 가게 앞 아파트가 일조량을 방해합니다. 따라서 햇빛은 잠시 머물 뿐 바쁘게 사라집니다.

도서관 식구들이 식사를 하고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언제라도 반가운 사람들입니다. 도서관 사람들은 도서관 사람들의 분위기가 있어요. 그 분위기 때문에 도서관 사서가 됐는지, 도서관 사서가 돼서 그 분위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늘 조용조용 재잘거리는 참새들 같습니다. 그들이 휘낭시에 7개를 구입해서 오늘 매출의 100퍼센트를 (글을 쓰고 난 후 늦은 시간 손님이 들어와 추가 매출이 생김) 올려줬습니다.


날이 저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날이 어둑해지고 차들이 라이트를 켜는 시간입니다. 이 골목은 유난히 저녁이 빨리 찾아오는 것 같아요. 책방 손님은 도서관 식구들이 다녀간 후 두 명이, 그리고 이제 문 닫을까 하는 시간에 세 명, 그리고 다시 프랑켄 슈타인을 읽을 때 시집을 추천해 달라는 학생 한 명이 들어왔습니다. 은지와 소연의 시집을 추천해 주니 아주 좋아했습니다. 시 모임을 주최하고 있고, 시도 쓴다고 했습니다. 시를 보여달라고 하니 블로그에 올린 시를 보여줬습니다. 부끄러워하면서도 누가 좀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은 모두 똑같은가 봅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글에 다가서는 용기를 얻습니다. 학생의 얼굴에서 책방을 대하는 마음이 보여서 반가운 마무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수채화를 그렸습니다만, 어제보다 붓 끝의 망설임은 줄었습니다. 밤이 깊어 가지만 어떤 일이라도 좋은 일은 아직 멀었고, 오늘 그림도 멸망입니다.



김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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