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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Jan 12. 2019

이른 새벽에 커피를 마셔 본 적이 있나요?

  


   이른 새벽에 커피를 마셔 본 적이 있나요? 잠이 많아 그런 경험이 없다면 아쉬운 일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영화를 보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미동도 없이 멍때리는 시간이었습니다. 헤드폰을 끼고 Eres Tu를 반복해서 듣기도 하고 Bic Runga를 여러 번 듣기도 했습니다. 플레이 리스트에는 새벽에 듣는 노래들이 있었죠. 나에게 새벽은 비밀스러운 유희였습니다. 해가 떠오르고 안방에서 아내의 인기척이 들리면 이 비빌 놀이는 종료되는 시스템이었죠. 

   


  요즘은 이런 즐거움을 갖지 못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아침잠이 사라진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반대입니다. 아침 기상 시간이 점점 길어져 지금은 거의 8시에 일어나곤 합니다. 슬픈 일이죠. 

오늘 아침엔 오랜만에 새벽에 눈을 떴습니다. 아내의 커피 내리는 소리에 눈을 떴지요. 우리는 잠시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셨습니다. 많은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우리의 대화는 길어지면 상처를 발견하거나 우울해지는 경향이 있었지요. 오늘은 그렇지 않았어요. 아내는 잠시 커피를 마시고 출정식처럼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며 김밥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도시락이었습니다. 나는 몇몇 단어와 문장들을 떠올렸습니다. 수잔의 작업실, 프로파간다, 키스헤링, 로맹가리와 꼬냑, 고래 그리고 카뮈.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 제주도, 검은 마스크 60개도. 여러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렇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난 커피잔을 빙빙 돌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오랜만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연우가 일어나 나오자 그 새벽은 쨍하고 깨져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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