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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Feb 08. 2019

휴일 잘 보내셨습니까?

   휴일 잘 보내셨습니까?



  모처럼 3일 명절 연휴를 보냈습니다. 휙 하고 지나갈 줄 알았는데 꽤 길게 느껴졌습니다. 거의 누워서 보낸 명절 연휴였습니다. 누워있자니 몸이 굳어버려 일어나면 몸이 또 아프고, 그러면 또 눕고, 누우면 다시 자고, 일어나면 또 아프고. 잠을 아무리 자도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통 때문에 괴로워 다시 누웠습니다. 휴일 마지막 날 아내의 불만도 터져버렸습니다. 그럴 만도 하겠다 싶습니다. 아무런 변명도 못 했습니다. 오늘 아침까지도 찌뿌둥한 몸을 추슬러 겨우 출근했습니다. 점심엔 사우나라도 가서 굳은 몸을 풀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나는 대중목욕탕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연휴 후에는 아쉬움이 남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도가 넘은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나가 버렸습니다. 여기서 잠깐……. 정말로 아무것도 안 했을까요? 다시 한번 돌이켜 생각해보겠습니다. 연휴에 들어가기에 앞서 난 한가지 다짐을 했습니다. 스마트폰을 자제하기로 했습니다.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충전을 한 번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되도록 주변에 두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아들이 스마트폰을 하지 않았다고 인정을 해줬으니까요. 다행히 한 가지는 칭찬을 받을 만했습니다. 8살 연우는 언제나 귀엽습니다. 밥을 느긋하게 먹어 혼날 때조차도 귀엽습니다. 엄마 눈치를 보는 중에도 만만한 나를 노려보며 투정을 가득 담아 노려보곤 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예쁘고 웃음이 납니다. 웃는 날 보고 더 이골을 내다가 엄마한테 혼나기까지 합니다. 그러면 연우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애처로워집니다. 하루는 알라딘에 가는 길까지 공원에서 30분 정도 모험 놀이를 했습니다. 그네를 둘러싼 어른 무릎 높이의 가드레일 위에 올라 중심을 잡고 한 바퀴 도는 모험인데 연우는 무섭다고 잡은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손이 내 마음으로 꽉 차게 들어옵니다. 무려 3바퀴나 돌고서야 내려왔습니다. 알라딘까지는 서울 자전거 따릉이에 태워 갔습니다. 안장을 가장 낮춰도 페달에 발이 안 닿았는데 이번엔 페달을 한 바퀴 돌릴 정도로 여유가 있습니다. 아이들의 성장 속도가 무섭습니다. 자전거를 타면서도 연우는 속도를 내라고 투정을 부렸지만 내내 싱글벙글하였습니다. 승민이는 이제 중3입니다. 알다가도 모를 중학생이라지만 승민이는 연우에게 다정한 오빠입니다. 엄마의 잔심부름을 하기도 하고, 빨래 일을 돕기도 하는데 정갈하기가 나를 넘었다고 아내가 말합니다. 엄마는 장 보러 갈 때나 산책을 나갈 때도 승민이를 동행하는데 승민이는 불평이 없습니다. 짐을 들고 엄마를 따르는 모습이 은근 어엿한 장남입니다. 누워 잠만 잔다고 아내의 핀잔에 대꾸하는 나에게 엄마의 신경을 더는 건드리지 말라는 중재의 사인도 보내는 걸 보면 이제 다 큰 청년의 티가 제법입니다. 그러다가도 게임을 할 때면 이내 내가 알고 있던 승민이로 돌아옵니다. 그것이 신기합니다. 우린 매일 닌텐도 Wii를 했습니다. 연우의 실력이 제법입니다. 마리오 카트를 하면 나보다 순위가 높아 우쭐대곤 합니다. 승민이의 게임 실력은 신비에 가까울 정도로 능숙해 모든 미션을 클리어 한 듯합니다. 특히 슈퍼마리오는 신급에 가까운 스킬을 보였는데 최근 슈퍼마리오 카세트가 인식이 안 돼 그 스킬을 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설날에는 윷놀이도 했습니다. 할리갈리 게임도 했습니다. 엉터리로 약은 수를 쓰는 연우, 그것을 다 들어주는 승민이가 재미있어 나도 끼워달라고 했습니다. 대신에 룰을 조금 바꿔 먼저 자기 이마를 때리고 종을 치기로 했습니다. 급한 마음에 자기 이마를 세게 때리는 연우를 보며 정말로 눈물 나게 웃었습니다. 우리는 휴일 동안 1000원 명랑 핫도그를 하나씩 들고 귀가하는 가족이었습니다. 욕실에 만든 작은 화단에 연우가 심은 씨앗이 싹이 올라온 것을 보며 네 명이 싹을 보며 감동을 하는 가족이었고, 영화 극한직업이 1000만을 넘었더라는 이야기, 마블 영화 이야기, 아내와는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 가족이었습니다. 내가 청소기를, 승민이는 먼지 밀대를, 연우는 물걸레를 들고 대청소도 했고, 콩나물 사는 엄마를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승민이가 흰머리를 뽑아줬던 것을, 연우가 눈을 뜨자마자 책을 읽는 것, 아내가 카레 요리를 하는 것, 이런 것들을 잊을 뻔했습니다. 하루하루가 만들어내는 소중한 기억을 말입니다. 









  창필이는 최근에 새로운 책을 준비합니다. 최초의 기억을 소재로 인터뷰를 합니다. 우리가 만드는 기억이 사건, 사고 위주가 아니라 자라나는 풀을 보는 것, 예쁜 석양을 보는 것, 바람을 느끼고, 잡은 손의 체온을 기억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대로 괜찮은 연휴였습니다. 올해에도 계속 그런대로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by illruwa

instagram @illruw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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