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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Feb 09. 2019

일일시호일

수연

  자신이 하고싶은 일과 재능을 찾지 못한 20살 노리코는 우연히 시작한 다도를 20년 이상 배운다. 다도는 생각보다 까다로웠고, 어려웠고, 하나 익히면 새로운것들을 배로 더 익혀야하지만 그녀는 꾸준히 배운다. 노리코는 글 쓰는 일을 하고싶지만, 큰 재능도 열정도 없어보인다. 다도 역시 그렇다. 오래 해도 재능이 보이진 않는다.

  노리코는 나와 비슷했다. 죽도록 하고 싶은 일은 없고, 하고 싶은 일은 있지만 재능이 없고, 채울 열정은 부족하다. 하지만 노리코는 꾸준히 다도를 했고, 다도와 차의 편안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영화가 끝날 무렵, 40대의 노리코는 이제 다도를 가르치려 한다. “이제부터 시작일 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 

나는 무엇을 꾸준히 안고 갈 수 있을까,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

-매년 반복할 일이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하지 않나요?

-세상에는 금방 알 수 있는 것들과 금방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금방 알 수 있는 것은 흘러가게 놔 두면 되고, 금방 알 수 없는 것들은 세월을 지나며 점점 깨달으면 된다.




일일시호일





  영화의 제목인 [일일시호일]. 매일 매일 좋은 날-의 뜻을 노리코가 깨닫는 장면이 좋았다. 30대의 어느 다도 수업 시간, 장대비가 내린다. 벽에는 ‘비 소리를 듣는다’는 문장이 씌여있다. 사계절은 모두 다르다. 나의 사계절, 봄에는 꽃들이 만개해서 괜히 나들이를 가야할것만 같은 따듯한 바람이 분다. 여름에는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게 뜨겁고 땀이 나지만 겨울에는 그리운 풍경이다. 쨍쨍한 모든 초록과 파랑들이 더 예뻐보인다. 가을에는 잎들도 바람도 나도 차분해지고 갈색과 붉은색이 좋아진다. 지금같은 겨울에는 (요즘은 눈이 오지 않지만) 살을 파고드는 추위, 찬바람 냄새를 만끽하는 것이다.

  매일 매일 좋은 날-의 뜻은 매일 매일 기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하루, 내가 있는 환경, 사람, 자연을 만끽하라는 것이다. 당연히 여기고 흘러보내는 날이 너무 많다. 이걸 쓰고 있는 지금, 눈이 어두워져 나는 방 불을 켰다. 엄마랑 집에서 보일러를 키고 있어 바깥 날씨와 공기, 밝기를 모른다. 물론 자연속에만 매일 매시간 살 수는 없지만 이런 지금도 ‘일일시호일’로 불려도 되는것일까 망설여진다. 매일을 만끽하는 것은 노력해보자 하지만 꽤 어려운일이다.


  그렇게 주변 사람에게도 더 잘하고, 감사하며 살자 하지만 누군가와 가까워진 만큼 다른 누군가와는 멀어진다. 노리코는 독립 후 새로운 연인을 만나고, 꾸준히 일을 하며 가족과는 이전보다 조금 멀어진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늦은 후회를 하고 슬픔에 빠지지만, 생은 유한하고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그럴 때 노리코에게 자책하지 말라 말해주며 일으켜주는 곳은 다도교실이고 곧 다케다 선생님이다.

  노리코를 보며 마음 둘 곳을 찾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인생의 목표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이루지않아도 어찌어찌 잘 연결되어 살 수 있는 것처럼, 하고싶고 되고 싶은 것이 없어도 놀림받을 일이 아니다. 영화가 말해주고 싶은 것이 아니였을까? 매일 무난히 감사하고 사랑하며 살길, 내가 편안할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이뤄내야 할 일 같다.



by 수연

instagram @yoridogjorip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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