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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Feb 14. 2019

세시에 본 낮달 때문에

by 서희



 

 

쉴 새 없이 코를 훌쩍이면서도 길게 길게 걸었다. 비염 약도 찬바람엔 소용없구나.

 

 

이제 오래 걸으면 허리가 아프고, 목은 거북이가 되어가고, 무릎 연골은 없어진 지 오래고, 골반은 틀어졌고, 올해에는 드디어(?) 비염까지 얻었다. (다행히 아직 손목은 괜찮다.) 그래도 번 돈으로 필라테스를 결제했고, 네 통의 영양제를 먹고 있다. 월세를 내고 있고, 내 고양이가 먹는 사료도 더 좋은 걸로 주문했다.

걷다가 기분이 좋아서 sns를 했다. 그래, 현대인이다. 이 각박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나는 현대인이구나.

 

 

요즘은 좀처럼 집에 있는 시간이 없다. 집순이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은가 보다. 마감하고 틈이 생기면 어디든 기어나가서 쪼그라든 허파에 바람을 채워온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제일 좋지만, 마감하고 밤 열한 시에 나가고 싶은 내 마음에 누가 맞춰줄까. 누구 말마따나 '어떤 친구는 거리상 멀리 있고 어떤 친구는 시간상 멀리 있다'. 오늘은 어디든 혼자 척척 돌아다니는 내가 좋다가도, 이런 나에게 너무 익숙해지면 언젠가의 누군가에게 벽을 치게 되진 않을까 하는 깊은 걱정을 했다. 또 이게 사랑받고 싶은 현대인이라 이런 모양이다. 하나만 했음 좋겠다. 

 

 

 

 

물론 알긴 안다. 내 문제는 항상 그거야. 같이 손을 잡고 벽을 넘는 게 어렵다는 거. 결국 혼자 몰래 벽을 넘어 도망가버리거나, 영원히 벽을 만나고 싶지 않아 다른 길로만 빙빙 돌아다닌다. 그래서 혼자 벽을 넘는 나를 붙잡아 같이 쿠당탕 넘어질 수 있는 사람이나, 애초에 벽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그래서 언제까지고 가만히 걸어도 괜찮은 사람들이 난 좋다. 

 

그래도 잘 배워야 하는 일이다. 혼자 걷는 일은. 내 옆의 당신에게 서툴게 하지 않으려면.

오늘도 담백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일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이제 담백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by 서희

instagram @seoheel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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