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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wa Oct 26. 2015

마음의 흔적

보기보단 꽤 따뜻한 사람

얼굴에는 수많은 흔적이 남아있다. 그것이 행복한 기억의 흔적이든, 힘들었던 날들의 상처이든 세월이 지나 머릿속에서 잊힐 지라도 얼굴에는 켜켜이 쌓여 흔적을 남긴다.

지난 금, 토 이틀간 여의도 공원에서 열린 행사 중에 작은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다. '나눔 대축제'라는 타이틀의 행사였는데 그곳에서 한 부스를 맡아 운영하던 친구의 부탁이었다. 하루에 두 시간씩 부스를 방문하시는 분들의 초상화를 그려드리는 역할이었는데 무료 행사였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기에 다양한 연령대의 많은 분들의 얼굴을 그려드릴 수 있었다. 실제로 모델이 됐던 분들은 4살의  어린아이부터, 중학생, 대학생, 나이가 있으신 중년의 아저씨까지 다양했다. 한 장을 그릴 때 소요되는 시간은 20~30분 정도였는데 그리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도 있고, 가만히 오래 있기 힘든 아이들의 경우에는 속도를 빨리해 되도록 짧은 시간 안에 그리려고 했다. 


짧은 시간 집중해서 (최대한 비슷하게) 그려 야하기 때문에 엄청 열심히 관찰했던 터라 그려지는 분들은 나의 시선이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이제와 든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고, 대부분 쉽게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셨다. 흠흠흠.. 누군가가 자신을 관찰한다는건 꽤나 쑥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니까.


어쨌거나 상대방의 동의를 구해 그 사람의 얼굴을 대놓고 관찰한다는 것이 쉽게 있을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초상화가 뭔지도 모른 채 엄마 손에 이끌려 온 어린아이부터 자신의 얼굴이 그려질 거란 것에 기대하며 앉은 사람, 그림에는 관심도 없을 것만 같은 까칠한 표정의 아저씨까지 다양한 얼굴의 사람들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얼굴을 관찰하며 재미있었던 것은 나이가 듦으로 인해 생기는 얼굴의  깊이였다. 부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몇몇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오셔서 쭈뼛쭈뼛 그림 그릴 수 있는지 여쭤보시곤 하셨는데   그중 몇 분은 실제로 앉아 초상화를 그려 가셨다. 처음에는 사실 까칠하고 조금은 무서운 표정을 하고 계신 것만 같아 긴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관찰하면서 본 것은 무서운 표정이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얼굴을 내보이는 것에 대한 긴장감이었고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살짝살짝 미소 지으시는 것을 보면 귀여우시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는 까칠해 보일 만큼 투박하지만 그 안에 담긴 따뜻한 마음도 느낄 수 있었다. 깊게 패인 주름들로 인해 무섭게만 보였던 얼굴은 그동안 쉽게 드러낼 수 없었던 세월의 여러 가지 감정을 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얼굴에는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담긴다. 살아오는 동안 내내 행복하고 싶지만 환경과 상황이 그렇지 못해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절망하고 방황하던 시절도 그리고 행복하고 기뻤던 순간도 분명 있었을 거다. 그 모든 세월의 흔적이 담긴 얼굴은 무섭다던지 하는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잠시나마 무서워하고 긴장했던 것이 죄송했다. 


얼굴의 생김이나 혹은 그 어떤 것으로 생긴 선입견으로 그 안에 감춰진 마음의 흔적까지 보지 못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 싶다. 어쩌면 그 사람은 보기보단 꽤 따뜻한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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