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하고 아름다운 Dec 19. 2022

불안해서 불안합니다.

“너는 기저귀를 벗은 나이에 나무계단에 서서 오줌을 당당히 쌌어. 아들로 태어났어했는데” 누군가 내가 말귀를 알아들을 때쯤 전한 이야기가 대부분의 기억을 차지한다.


최초의 순수한 나의 기억은 꿈이다. 실제 본 것과도 같은 이미지가 각인된 그날의 장면은 아직까지 선명하다.

달랑 네 집이 서로에게 기대어있는 한동짜리 연립주택, 맨 오른쪽 나무문으로 들어가면 이층 집이 나오는 곳 나의 첫 번째 집이다.

옆의 세 집이 가스보일러로 바뀌는 동안 우리 집 문 밖엔 불씨를 꺼트리면 안 되는 연탄보일러가 그늘진 창고 건물과 마당을 이어주었다.

정원이라 부르기엔 여느 부잣집 마당처럼 감나무도 뽀얀 목련도 없었지만 덕분에 너무 쓸쓸하지 않게 사람 사는 곳 같아 보이게 하는 정원엔 서로 어울리지 않는 풀과 나무가 바로 옆 공터의 오래도록 치우지 않은 공사자재들처럼 허술하게 구색을 맞추고 있었다.

마당엔 육각형 모양으로 된 시멘트 블록이 깔려있어 네 집의 크고 작은 아이들이 약속 없이 어슬렁거리고 모이기에 좋았다. 딱지치기도, 구슬 따먹기도 비가 오면 우산을 모아 텐트를 치기에도 괜찮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마당을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네 집의 가족 수보다 늘 많았다. 앞뒤로 철문도 있었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곳을 골목을 질러가는 샛 길로 사용했다. 네 집 아이들의 것이어야만 하는 마당에 모르는 사람들의 영역 침범은 나에겐 못마땅한 것이었다. 어른들은 막을 수없어 노려 보았고, 내 또래 아이들은 지나가는 꼴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기다렸다는 듯 마당에 나가 우리 집인데 네가 왜 들어오냐고 무안을 주었다. 그런 어린이는 네 집 중에 나밖에 없었다.


할머니, 아빠, 엄마, 오빠, 언니, 나까지 6명이라는 숫자는 방 두 개에 비해 많았지만 집엔 늘 사람이 없었다.

옆집의 아이들이 학원을 가는 시간엔 그 건물은 나 혼자의 것이었다. 비어있는 집은 유난히 조용했고 방에 불을 켜지 않아도 훤한 어느 낮,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조심스럽게 소리 내지 않고 문 쪽으로 갔고 나무문 옆 반투명 유리 사이로 밖에 서있는 형체를 보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두려움에 입을 다물고 뒷걸음질 칠 뿐이었다. 그것은 크고 검은 뭔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문 손잡이를 빠르게 돌리는 소리로 그는 힘이 셌고 위험하다는 사실은 확실해 보였다.

문은 흔들렸다. 밖의 그가 계속해서 문을 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문을 열려는 건지 부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소리만 점점 크게 울리고 있었다.

허술하게 하나의 잠금장치 만으로 집을 지키던 나무문은, 문 앞의 커다란 형체를 한 그에 의해 점점 틈이 벌어지고 있었고, 그 틈으로 뚫고 들어오는 빛도 점점 커져 집안이 밝아지고 있었다. 곧 열릴 거 같아 무서웠지만 문 쪽으로 가, 하나밖에 없던 열쇠 손잡이 위로 매달린 작은 철 고리를 걸기 위해 애썼지만, 밖에서 안으로 미는 힘을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그는 크고 셌다. 걸어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을 고리를 채 걸지도 못했는데, 바로 눈앞에서 덜컹하고 열려버린 문 뒤의 그를 그대로 가까이에서 마주해야 했다.

그는 회색 털을 가진 거대한 토끼였다. 그의 등 뒤로 비치는 햇빛에 집안 가득 그의 그림자로 덮였다. 나는 그를 밀어내며 계속해서 문 닫기를 시도했지만 문보다 높은 그의 귀가 집안으로 쉽게 문을 밀고 들어왔다. 귀 아래 보이는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눈에서 피를 흘리는 것만 같았다. 막지는 못하지만 나는 그렇게 계속 문에서 그와 대치했다. 계속해서 꿈이 깰 때까지……


한동안 내게 꿈이란 공백으로 비어있었다. 머리만 닿으면 자던 시절엔 숙면으로 지워졌기에 꿈같은 것이 낄 틈이 없었다. 어린 내가 기억하는 단 하나의 꿈이 최근 들어 수면제를 먹어도 깨끗하고 맑은 잠을 잘 수 없어 깨고 자고를 반복하는 동안 드라마 시리즈물처럼 다시 부활했다. 그 꿈들의 공통점은 누가 자꾸 집으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구소련에서 온 얼굴을 한 하얀 피부의 배관공들이 웃통을 벗고 집에 들어와 있기도 하고, 낯선 얼굴의 사람들이 여럿 집 문 앞을 막고 서있어 내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기도 한다. 만나도 인사를 받지 않는 불친절한 친척, 만나고 싶지도 않은 친적들이 내 집에 눌러앉아 내 물건을 만지고 사용하고 그들이 문단속을 허술하게 해 집안에 있어야 하는 고양이가 밖으로 나가는 잃어버리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주로 누군가 내 영역에 침범하는 꿈이다. 만나지 않아도 되는 타인이 자꾸만 나타난다.

단단한 이중문을 다는 날이오면,숙면을 할 수 있을까?

그럼 더 이상 이들을 만나지 않게 되겠지.

작가의 이전글 내 나이가 되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