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학과 자뻑 사이


난 게임이 재미있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컴퓨터 게임도 그렇고, 가위바위보 같은 단순한 게임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신나서 하는 머리나 몸을 쓰는 게임, 술자리 게임도 그렇다.

아마도 늘 지기 때문일 것이다.(물론 단체생활도 싫어하고, 술도 싫어한다, 한국사회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이긴 경험을 가져본 이들은 지더라도 다음 판엔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서일까 기다려지는 눈빛을 하고 있다. 나로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른이 되고 나이가 먹어 좋은 몇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것들을 원하지 않으면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무언가를 좋아하는 계기는 잘하는 것이다. 좋아하면 잘하고 싶어 진다. 잘하면 더 재미가 있고 에너지를 더 쏟아 더 큰 성취를 얻으려고 한다. 결과적으로 재미를 느끼는 것은 계속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잘하는 것이 가능할까?


원래 그림 잘 그리는 사람? 분명 어딘가에 있겠지만, 원래부터 해본 적도 없는 일을 익숙해지기도 전에 척척 오랫동안 해왔던 것처럼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아마도 천재라 불릴 것이다.

보통의 우리는(이 글을 읽고 있는다면) 이미 스스로 자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고, 천재가 아니기에 반복적인 연습이 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은 간도 안 보고 찌개를 끓이는 엄마, 처음에는 지금처럼 척척 후다닥 뚝딱 해냈을까? 수없이 많은 반복의 시간이 지금 빠른 손놀림으로 밥, 국, 나물, 밑반찬, 생선구이까지 한꺼번에 척 상에 내놓는 사람으로 만들어 줬을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좋아서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졌기 해 해내야만 하는 것이라 더 빨리 습득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대부분 일을 그런 학습과 반복 훈력 과정을 통해 배운다.

그러나 반복한다고 모두가 그 일을 꼭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요리를 후다닥 빨리 만들어 낼 수 없다. 찌개는 만들 수 있지만 반찬까지 하려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일품요리를 선호한다. 그리고 설거지가 느리다.

주문을 받는데 너만 서있으면 없던 줄이 생기고 계산을 왜 못하냐는 이유로 아르바이트하던 빵집 매니저에게 종종 구박을 받고 매니저는 설거지하는 방법을 직접 시연하기도 하고 빵 이름 발음하는 것들을 도와줬지만 나는 부족했다. 일을 잘하는 매니저는 나를 손님 없는 한가한 매장으로 재배치시켜줬다. 그곳에서 나는 혼자 매장을 지키며 한가롭게 한 시간에 몇 명오지 않는 손님을 응대하다 빵 그림을 그리기도 하곤 했다.

나는 천천히 느리게 하는 일이 맞는다는 것을 사람 상대하는 것에 어색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천천히 하라면 나도 두꺼운 층의 빡빡한 카푸 치도도 만들 수 있었다. 시간만 여유 있다면 말이다.

골프, 탁구, 테니스 등의 구기종목은

공이 맞기까지의 절대적인 연습의 시간이 필요하다. 공이 맞은 다음에야 공을 원하는 방향으로 보낼 수 있다.

그 시간을 견뎌내면 어쩌다 한 번씩 공이 내가 의도한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내가 자세를 바르게 하면 할수록 공은 잘 맞고 맞은 공은 정확한 방향으로 뻗어간다. 그리고 공이 잘 맞아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그 한방의 힘 있게 쭉 뻗은 공을 만들기 위해 건물 밖 흡연구역의 넥타이 맨 아저씨들은 오늘도 골프 스윙 연습에 한참이다.


그런데 그런 지루함을 참고, 시간을 보내고 , 자꾸 그려보고, 안되면 다시, 혹은 다르게 그려가면서 , 생각도 다시 해보고 그림을 마무리 지으면 생각보다 내가 잘 그리고 있다는 걸 발견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또 그리고 싶은 것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에 조금씩 자신이 생기는 것이다.

막상 그리는 순간에는 어려울 때도 막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그것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의 그림은 이미 내가 처음의 그렸던 그 그림과는 다른 곳에 가 있다.

그럴 때 그림은 성장한다.

나는 왜 이것도 못하나 왜 이렇게 안되지 하는 괴로운 순간을 버티고 창작을 이어가다 보면 스스로 만족감에 취해 내 작업이 좀 괜찮은데 자꾸 보게 되고 기분이 괴로운 순간과는 다른 시간을 걷고 있는 걸 느낄 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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