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영화에서 얻는 힘

대리만족 시켜주는 가족

by Illy

평소에 자주 영화를 보는 편이라 좋아하는 영화도 여러 개 있다.

그중에는 몇 번이나 보고 싶어지는 영화와, 충격이 커서든 잔인해서든 슬퍼서든 뭐가 됐든 '보고 나서 사흘 정도 충격에서 못 벗어났고,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한 번밖에 못 볼 것 같은 영화'가 있다.


"미스 리틀 선샤인"은 이 중 전자에 속한다.

언제 누가 샀는지 모르겠지만(엄마나 나나 둘 중 하나다) DVD가 집에 있었고 몇 번이나 봐 온 작품이다.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원작 제목 "Little Miss Sunshine"을 왜 어순만 바꿨는지 궁금했다)



2006년에 개봉된 영화이며 당시 각종 영화제에서 여러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영화를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꼽는 사람도 꽤 많이 봤다.


노란 버스에 타려고 하는 가족을 찍은 영화 포스터를 본 적이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적으면 이렇다.



7살 소녀 올리브 후버는 미인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꿈이다.

그리고 마침내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리틀 미스 선샤인 선발 대회에 출전할 자격을 얻어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를 향한다.


여자와 마약을 좋아하지만 올리브를 전적으로 응원해 주고 대회에서 출 춤을 함께 연습해 주는 할아버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아빠 리처드(그렇다고 자신도 크게 성공한 건 아님), 그런 아빠와 충돌하는 엄마 쉐릴, 비행기 조종사가 꿈이며 꿈을 이룰 때까지 말을 안 하겠다고 마음먹은 오빠 드웨인, 그리고 자살시도를 하여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오게 된 삼촌 프랭크......


그다지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은 가족의 여정을 그린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많다.


하지만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여행 초반, 차가운 공기가 도는 가족이 들른 다이너에서 아침식사를 먹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서로를 보지도 않고 지쳐 있는 모습.

음식 취향도 제각각이고, 의견이 부딪치는 모습.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로는 사이좋게 식사를 할 수도, 즐겁게 여행을 가지도 못한다.


그런 모습이 온전한 "가족"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위안을 얻는다.

(물론 사이가 좋으면 좋다. 하지만 가족이라고, 부모라고, 무조건 항상 잘 맞아야 하고 잘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와중에 가족을 하나로 뭉쳐주는 올리브(와 "알라모드")의 힘은 대단하고 볼 때마다 장면 마지막에는 미소를 짓게 된다.



어떤 영화를, 어떤 장면을 왜 좋아하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스토리가 재미있어서, 웃겨서, 배우가 멋져서, 배경이 예뻐서, 대사가 좋아서, 음악이 절묘해서......


정말 다양하겠지만 내가 이 아침식사 장면을 좋아하는 이유는 "대리만족"을 시켜주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가족에게 올리브와 같은 밝은 에너지를 주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과 가족에 대한 원망이 약간은 있는 상태에서 이 장면을 보면 부정적인 감정이 조금은 풀린다.



어릴 때를 생각해 보면 비슷한 경험도 했던 것 같다.

내가 무언가를 고르고, 가족이 그 선택을 한 나를 부정하거나 비웃는 일.

내가 아닌 그 선택에 대한 비웃음이었다고 해도, 악의가 없었다고 해도 나에게는 서운함으로 남았고 그렇게 쌓인 작은 상처는 어른이 되어서 곪은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었다.


내가 못 받았던 따뜻한 대우를 받는 올리브(위태로운 순간도 있지만)를 보면서 안도하고, 차갑고 서로에게 지쳐있어도 올리브를 위해 웃어보는 어른들에게 희망을 느끼기도 한다.



좋은 영화가 꼭 사람의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 영화는 적어도 나에게는 치유에 가까운 힘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추워서 얼어붙은 손가락을 따뜻한 물에 담근 느낌과 비슷하다.


이 영화를 만난 건 정말 다행이다 싶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과거의 나에게도 고맙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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