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몸치, 인정.

이름에 따라 편해지는 마음

by Illy

어느 날 나는 내가 "몸치"라는 말을 들었다.

비웃는 듯한 느낌이 아닌 애정이 담긴 말임을 알 수 있는 맥락이었고 나도 이견은 없었다.


산책을 나가면 자주 넘어졌고 집에서도 냉장고에, 의자에, 침대에, 책상에 툭툭 부딪치면서 다녔다.

거리감을 잡지 못하는 건지 성격이 급해서 서둘러 움직이다 보니 그렇게 되는 건지.

아무튼 그래서 팔다리에 멍이 많다.

그러니까 나는 "몸치"라는 말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였을 뿐이 아니라 다른 느낌도 있었다.

"몸치"라는 말을 듣고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수수께끼가 풀리는 것 같은, 무언가가 해소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중 모퉁이를 돌 때마다 넘어졌던 시기가 있었다.


매일 함께 등교한 친언니는 처음에는 걱정해 줬지만 자꾸 학교에 도착할 시간이 늦어지니 그런 나를 어이없어했다.

그리고 집에는 다양한 사이즈의 밴드가 구비되어 있었다.


나는 나름대로 안 넘어지는 방법을 연구해 보기도 했다.


길을 살펴보면서 걷기도 하고, 반대로 앞만 보고 걸어가기도 하고, 길 가운데를 걷기도 양 끝을 걷기도 해 보았다.


그런데 효과적인 방법은 딱히 없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신체적인 성장"이었다.

키가 크면서 넘어지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아예 없어지지는 않아 넘어져서 찢어져 버리게 된 바지도 많았지만.)


당시 일본에서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자주 들은 말은 "鈍くさい(돈쿠사이)"였다.


"둔해 빠졌다"정도가 될까 싶다.

어떤 뉘앙스로 표현되어도, 아무리 애정이 담겨 있어도 내가 기분 좋게 받아들일 일은 없었던 표현이다.

가족들은 걱정 때문에 한 소리였고 괴롭힐 의도는 없었겠지만 나는 이 표현이 싫었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절대 남에게 이 말을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몸치"라는 말을 듣고 기쁘거나 행복한 건 아니지만.

경멸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아서일까.

길을 못 외우는 게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듯이 "어쩔 수 없음"이 인정된 것 같아서 그럴까.

그냥 인정할 수 있었고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한테 "몸치"라고 한 사람과의 관계성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니 내가 남에게 이 말을 쉽게 할 일은 역시나 없을 것 같긴 하다)



아무튼 "둔해 빠졌다"보다는 마음에 들었다.

뭐든지 꼭 이렇게 이름을 붙여야 하는 건 아니지만 때로는 이름이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일본어 한국어 중 하나만 알아도 이런 표현의 변환은 가능하겠지만, 두 언어를 알아서 좀 더 다양하게 나 자신을 표현하고 인정하는 방법이 있는 것 같아서 좋다.


언어로 얻게 되는 건 기회나 사람과의 만남뿐이 아니라 나를 담을 수 있는 조금 더 큰 그릇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가 그친 것 같아 산책을 나가고자 한다.

오늘도 조심히 걸어가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