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 삶의 증거

채우고 비우고 또 채우고

by Illy

화요일.

아파트 단지 분리수거 날이다.

일주일 동안 뒷베란다에 모아놓은 각종 재활용품들을 건물 밖 수거장으로 배출하러 간다.



이 아파트에는 1년 조금 넘게 살았다.


그전에는 오피스텔에서만 살아봤었고, 또 그전에는 일본에서 살았기 때문에 1주일에 한 번 분리수거의 날이 정해져 있다는 게 신선했다.



가장 편했던 건 오피스텔이다.


오피스텔에 따라서 자세한 규칙이 다르겠지만 내가 살던 곳은 언제든 분리수거장이 열려있어 큰 박스나 페트병이 있으면 그때마다 가져가면 됐었다.

집 내부에 모아두는 공간도 없었고, 원래 모아두는 건 싫어하는 편이라 이 방식이 편했다.


가장 불편했던 건 일본이다.

물론 일본도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살던 곳은 품목별로 요일이 정해져 있어 정해진 요일 아침 8시쯤까지 집 밖에 지정된 곳에 가져가면 된다.

가령 제1, 3 월요일은 종이류, 제2, 4 화요일은 캔류 등의 방식이다.


매주 버릴 수 없는 품목이 있어 예를 들면 종이류를 버리는 날 오후에 큰 박스 쓰레기가 나오면 보관할 곳이 없어 엄마 눈치를 보기도 했었다.

전날 밤에 배출하는 걸 금지하는 아파트도 꽤 있다.

그래서 늦잠을 자고 싶어도 아침 7시~8시에는 한 번 일어나서 1층으로 내려가야 했다.


"이러면 평생 못 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엄마한테 그렇게 말했고 엄마는 농담으로 알았는지 웃었지만 나는 진지했다.

아니,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얼마나 다양한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달은 자신이 먹은 캔맥주와 함께 사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자잘한 기억 조각들과 그곳에서 당연했던 습관은 한국 생활에 "신기함"을 더해준다.

내가 살았던 오피스텔처럼 언제든 배출 가능한 것도 신기했고, 또 아파트의 분리수거의 날도 나름 신기하다.



오늘도 바구니와 박스를 들고 분리수거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100걸음에 지나지 않은 이동 거리. 하지만 무언가 해낸 기분이다.



손에 든 박스나 바구니에서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꺼내 종류별로 버린다.

다 끝내고 쓰레기를 들고 온 가벼워진 바구니를 들고 다시 집으로 간다. 시간으로 따지면 5분도 안된다.

하지만 이 5분이 나에게는 중요하다.

한 주에 한 번, 수거장을 다녀옴으로써 내가 생활을 "영위"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어서다.




밤 7시를 넘어서 분리수거장을 가면 꼭 누군가 있고, 가지고 나온 재활용품을 버리고 있다.


잠옷바람인 할머니.

지금 막 들어와서 집에서 쉬기 전에 분리수거를 끝내려는 정장을 입은 아저씨.

분명히 아기가 도우미를 자청했을 것이 틀림없는, 페트병 하나 든 아기 손을 잡은 젊은 엄마.

이건 어디에 버려야 할지, 저건 어디에 버려야 할지 경비 아저씨께 확인하고 있는 학생.


화요일 말고는 그렇게 아파트 주민이 모여 있는 걸 볼 일이 없다.

아파트의 네모나고 무기질적인 건물이 약간은 따뜻해 보이는 날이다.



그렇다고 늘 이 날이 기다려지고 늘 기쁜 마음으로 수거장으로 가는 건 아니다.

귀찮을 때는 있고 수요일부터 다시 열심히 살자!! 이 정도로 큰 에너지를 주는 것도 또 아니다.

그냥 한 주 동안 어떻게든 살려고 채웠고 또 한 주를 살려고 비우는, 삶이 대한 작은 힘을 느낄 뿐이다.


이왕이면 앞으로의 한 주 동안 그 삶이 좀 더 풍요롭고 평화롭고 따뜻하기를 바라면서 집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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