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라 말해도 될까

음식을 앞에 두고 호흡 한 번 두 번

by Illy

요 근래 음식 취향이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입맛이 바뀌었다고 하기보다는 먹는 방식에 대한 취향이 바뀌었다.


전에는 뭐든 "갓", "막"을 좋아했다.



갓 구운 빵, 몇 초 전까지 보글보글 끓던 따끈한 국물, 냉동실에서 막 꺼낸 아이스크림.

식었거나, 녹았거나, 불거나, 그런 "변질"을 겪게 되면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결국 맛있게 먹기는 하지만 말이다.



"(내 기준) 가장 좋을 때"를 놓치기 싫어서 엄마가 저녁 준비를 했다 하면 바로 식탁으로 갔고, 음식이 다 되어도 정리하느라 자리에 앉지 않는 엄마를 열심히 불러보기도 했다.

엄마도 따뜻하게 먹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아이스크림의 경우에는 더 심했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이해하고 있기는 하지만, 한 방울이라도 액체가 되어 흐르는 걸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밖에서 먹을 때에는 주문한 아이스크림이 나오자마자 무슨 경기라도 시작된 것처럼 허겁지겁 먹었고, 친구와 함께 있어도 티가 안 나게끔 최대한 빠르게 먹어치웠다(나중에 알았지만 친구들 왈 "티는 다 났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음식을 앞에 두고 같이 먹는 사람들과 "맛있겠다", "이건 뭐지?" 등의 담소를 나누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입안에 넣었을 때 데일만큼 뜨겁지 않고, 적절한 온기가 느껴진다면 그걸로 만족하는 내가 되었다.

요리에 쓰인 재료의 맛을 느껴가면서 먹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바로 먹는 건 강박관념과도 비슷했다.

꼭 음식에 변화가 없을 때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해로울 것까지는 없었지만 이로울 것도 딱히 없었다.


머리로 알고는 있어도 고치기 쉽지 않은 게 강박관념이지만 내가 어떻게 이런 변화를 겪게 되었는지 정확한 계기는 모르겠다.

맛있게 먹으려는 건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마음이 편안하지는 않았었고, 빠르게 뜨겁게 먹는 일에 지쳐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험이 쌓였다.


같이 식사를 해온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고 여러 식당도 가보고......

직접 요리도 하면서 제철 음식의 향이 얼마나 좋을지, 어떤 색이 보여야 맛있을지 생각하면서, 또 실제로 겪어가면서 몸에 익혔다.


조금 식어야 부드러워지는 음식도 있고 가열하고 나서 조금 둬야 속까지 골고루 익는 재료도 있다.

그런 것까지 몸소 알게 되고 그제야 내가 변해갔다.

그리고 중요한 건 지금이 훨씬 좋다.



그래도 어린 나의 편을 들어준다면 지금이 좋은 건 서둘러 먹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뭐든 한 번에 잘하고, 한 번에 알아챌 수는 없으니까.



아 참, 그래도 아이스크림은 지금도 엄청 빠르게 먹는다.

이건 맛있게 먹고 싶다를 떠나서 흘리기가 싫다.


하지만 이것도 언젠가 어떤 계기로 변할 수 있다.

그때는 그런 나를 다시 받아들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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