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은 여전히 적이었다.
〇포그롬이란?
“아수라장에 분노를 퍼붓다, 폭력적으로 파괴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러시아어이며 주로는 유대인에 대한 비유대인의 폭력을 나타낸다.
1800년대부터 “포그롬”으로 불리는 사건은 있었으나 오늘 다룰 내용은 1946년에 폴란드에서 일어난 “키엘체 포그롬”에 대해서다.
〇키엘체(Kielce)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와 제2도시인 크라크푸 사이 딱 중간 즈음에 있는 시. 인구는 약 20만 명이며 과거에는 석회석 채굴로 유명했지만 현재는 상업도시다.
즉 키엘체 포그롬이란 말 그대로 키엘체에서 일어난 유대인에 대한 박해 행위를 말한다.
때는 1946년 여름.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가 소련군에 의해 폐쇄되고 유대인이 해방된 지 1년 반 정도 지났을 때였다.
키엘체에 거주하는 8살 소년이 부모님 몰래 집을 떠난다.
부모님은 실종신고를 했었지만 다행히 아이는 이틀 후에 무사히 돌아온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한테 "유괴되어 지하실에 갇혀 있었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함께 경찰서로 가는 길에 아이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180명이 사는 유대인회관을 가리키며 "나는 이 건물 지하실에 있었다", "입구에 있었던 유대인이 나를 끌고 갔다", "다른 아이들도 지하실에 있다" 등의 말을 한다.
이 회관에는 지하실은 없었다. 모든게 아이의 거짓말이었다.
7월 4일에는, 폴란드 군인 몇 명과 경찰관이 조사를 위해 이 건물을 찾아 온다.
이 시점에서 이미 소문은 널리 퍼져 있었고, 뿐만 아니라 "여기서 유대인이 폴란드 아이를 죽였다"는 식으로 왜곡되어 있었다.
결국 소문으로 인해 분노에 차 있던 시민은 무장했고 경찰관들이 건물 내부에 있었던 유대인을 마당으로 끌고 나오자 그들에게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다.
약탈, 폭력, 총살……
결과적으로 영유아나 임산부도 포함한 42명이 사망했고 40명 이상의 부상자가 나왔다.
이 사건 때문에 유대인에게 폴란드는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이 강해져 이주를 서두르게 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사를 읽기만 해도 오싹해지는 사건이다.
소문이 퍼져서 큰 학살로 이어진 사건은 다른 곳에서도 일어났지만 정부 주도가 아닌 경찰/무장 시민에 의해 이런 희생자 수가 나오다니 사람의 의구심이나 불안감이 이렇게 무섭구나 싶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홀로코스트 관련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에 대해 흔히들 "기적"이라 여기게 된다. 이와 동시에 그 정신력이나 체력, 위험한 순간에서의 판단력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곤 한다.
키엘체에서의 인구 데이터를 보면 역시나 기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1930년대에는 24000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는데 1945년에 돌아온 것은 200명이었다.
숫자만 보면 우리는 200명의 유대인을 귀하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2만 명을 넘는 유대인이 사라지고 나서 집이나 직업을 얻게 되는 이른바 “덕”을 보게 된 비유대인 주민들 입장에서는 다시 나타난 유대인들은 여전히 “적”이었고 생활을 위협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아이의 거짓말은 폭력의 구실이 되었으나 이 거짓말이 없었더라도 언젠가 이런 사건이 일어났었을 것이다.
(실제로 폴란드 곳곳에서 수용소에서 돌아온 유대인에 대한 박해 사건이 빈번히 일어났다)
어느 민족이나 종교에 있어서도 종교상/역사상의 이유, 경제력의 차이 등으로 적대관계에 있는 민족이나 종교가 있기 마련이지만, 큰 전쟁이 끝났다고 사람들의 감정까지는 바뀌지 않는다는 부분을 잘 보여주는 사건인 것 같다.
또한 2016년 TIME 지 기사에 따르면 이 시기의 유대인의 이주 나 거주지 정보에 관한 문서가 JDC(American Jewish Joint Distribution Comittee)에서 공개되어 이 포그롬 이후 폴란드에서의 인구변동에 대해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야 접근 가능한 정보들도 많으니 여러 연구에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