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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에서 보이는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
by
Illy
Jun 3. 2023
어느 날 집 주변을 산책하다가 고속도로 휴게소로 이어지는 길을 발견했다.
안내판도 있고 가로등도 설치되어 있는 잘 정비된 길이다.
근처에 휴게소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도보로 간다는 생각을 못했었다.
몇 번 가보니 지역주민도 이용하는 특산물 판매장도 있어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아도 휴게소로 들어가는 사람은 꽤 있는 것 같았다.
규모가 큰 휴게소는 아니어서 매점이나 식당 등 시설은 그렇게 다양하지는 않지만 오고 가는 차와 사람들을 보면 나도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그 휴게소는 주말에 산책을 나가면 꼭 들르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5월은 특히 연일 여행 가기 좋을 날씨였고 관광버스가 많았다.
거기서 내려오는 화려한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핫도그나 감자를 사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처음에는 매점이나 식당, 몇 년 전에 출시됐을까 싶은 오래된 장난감을 파는 판매대 등을 흥미롭게 구경하고 무인 카페에서 커피도 사 먹으면서 여행객처럼 휴게소를 즐겼다.
그렇게 몇 번을 다녀보니 조금씩 즐기는 방법이 변해갔다.
벤치에 앉아 다 같이 만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고, 언제 가도 문이 닫혀 있는 옷 가게의 주인의 정체에 대해 상상해 보고.
나는 더 이상 여행객이 아니었고 눈에 들어오는 정보를 토대로 사람들의 여행과 생활을 느끼려고 했다.
그렇게 관찰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자잘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넓은 주차장 뒤쪽에서 웃으며 내려와 함께 화장실에 들어가고 뭘 먹을지 상의하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휴게소 건물에 가깝게 주차하려는 승용차들.
그 사이사이를 위험하다며 서로 손을 잡아주며 다니는 가족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세차장에 길게 줄을 서고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기름을 넣으려고 또 줄을 선다.
잠깐 들르는 곳일 뿐인데도 사람들의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들이 보인다.
사람들이 휴게소로 가는 이유와 배경은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할 것이다.
여행객뿐이 아니라 출퇴근/출장으로 이용하는 사람들, 잠깐 쉬러 들어온 트럭 기사들, 나처럼 산책 겸 걸어서 온 동네 주민들.
어떤 날에는 "근조
謹弔
" 표시가 있는 버스가 관광버스 사이에 서 있는 걸 봤다.
행복한 여행만이 존재하는 건 아님을, 보이는 밝은 표정과 들리는 웃음소리만이 전부는 아님을 다시금 느낀다.
참 배울 게 많은 산책이다.
나는
아마 이번 주말에도 휴게소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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