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망록 Vol.7 흔하다면 흔한 사상
잠재적 테러범은 많다
2011년 7월 노르웨이.
오슬로 정부 청사 폭발과 우퇴이아섬 총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벌써 12년이 지났지만 최근 일 처럼 충격이 컸던 기억이 있고 2018년에는 영화도 제작되어 큰 화제가 되었다.
〇사건 개요
오슬로와 우퇴이아 섬의 위치2011년 7월 22일 오후 3시 반.
당시 32살이었던 노르웨이인 청년 아네르 브레이비크가 오슬로에 있는 정부기관 부근에 준비해 놓은 폭탄이 터졌다.
폭탄은 차량에 실려 있었으며 폭발하면서 차량도 함께 터져 큰 피해가 나왔다.
이 건물에는 총리 집무실도 있었지만 당시 총리는 부재중이었다고 한다.
브레이비크는 이 폭발 후 택시를 타고 우퇴이아섬을 향한다.
그 섬에서는 당시 노르웨이 여당이었던 노동당 청년부의 집회가 열리고 있어 약 700명의 10~20대 남녀가 참가하고 있었다.
브레이비크는 경찰관 제복을 입고 오후 5시경 학생들을 향해 총난사를 시작했다.
오슬로에서는 8명, 우퇴이아 섬에서는 69명의 희생자가 나왔고 섬에서 희생된 사람 중 2명은 총을 맞아서가 아닌 도망가려다가 익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〇범인의 사상
브레이비크는 반 이슬람, 반 다문화사회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타깃이 된 노동당은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으며 이들에게 타격을 주면서 자신의 정당함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체포된 후 브레이비크는 정신감정을 받기도 하였으나 본인이 정신적 질환은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노르웨이 형법상 그에게 적용되는 최고형인 21년형에 처해졌다.
희생자 수와 사회적 혼란을 생각하면 너무나 짧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는 추후에 재판소 판단에 따라 연장될 수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2022년에 수감 10년이 넘어 가석방 신청이 가능해졌지만 재판소는 이를 기각했다고 한다.
정부 기관 폭파, 섬에서 10대~20대 청년들에게 총 난사, 70명 이상 사망.
이런 충격적인 키워드 때문에 그가 특별히 잔인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나 브레이비크의 사상만 보면 "브레이비크뿐이 아니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물론 브레이비크만이 겪어 온 경험이나 성장과정이 있고, 혼자서 폭탄의 재료를 모으고 경찰관 옷을 준비하면서 대규모 테러를 계획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편견과 차별적인 시선으로 타자를 바라보며 배척할 생각부터 하는 사람은 흔하다.
그는 그런 사상을 각종 모임에 참가하거나 여당에 대한 공격이라는 형태로 행동에 옮겼을 뿐이며 그는 잠재적인 테러 범에게 무기를 쥐게 할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우퇴이아섬에 있었던 사람 중 3분의 1이 PTSD로 고생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참고: Newsweek Japan 2021년 7월 31일의 기사).
아이들~20대들이 표적/도구가 되지 않는 그런 사회는 언제쯤 오는 걸까. 오기는 하는 걸까.
분명히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지만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마음속 어딘가에서 포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래도 적어도 지금까지 보다는 안전이 잘 지켜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