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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비망록
비망록 Vol.10 연구 윤리의 결여
터스키기 매독 연구
by
Illy
Jun 9. 2023
끔찍한 인체실험이라고 하면 나치 정권하 강제 수용소에서 진행된 실험들이 먼저 떠오르곤 하지만 오늘은 미국에서 피실험자를 속이면서 4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진행되었던 실험에 대해 정리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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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개요
1932년 미국 공중위생국이 매독 환자의 증상 진행 과정 관찰을 목적으로 한 연구를 시작한다.
매독은 성매개감염병의 일종이며 10년 이상 방치 되면 보행장애, 기억장애를 일으키고 최종적으로는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병이다.
이 연구에 협조한 건 앨라배마 주에 있는 터스키기 대학교였다.
이 대학교는 1964년 공민권법 시행 이전부터 있었던 흑인을 위한 대학교였다.
최종적인 피실험자는 그 지역에 사는 가난한 흑인 농민 약 600명이었고 그중 이미 399명이 매독에 감염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연구자 측은 그들에게 증상을 관찰하고 치료를 무상 제공하겠다고 설명했지만 이는 거짓이었고 오히려 연구자들은 피실험자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게 했다.
항생제가 유효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도 연구자들은 피실험자들에게 약을 투여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들에게 "매독"이라는 병명조차 밝히지 않았었다.
지역 주민이라면 받을 수 있는 매독 프로그램에 관한 정보도 차단하고 병역 등록 시에도 치료를 받을 기회를 빼앗았다(몇 명은 이때 항생제가 투여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은 40년 동안 방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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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종결
1970년 샌프란시스코 공중위생국 소속 성감염병 조사원이었던 피터 벅스턴(Peter Buxtun)이 언론에 이 이야기를 폭로한다.
그전부터 그는 윤리적으로 우려되는 부분에 대해 지적하고 있었지만 상사는 그의 이의 제기를 외면하고 다시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을 뿐이었다.
결국 그의 폭로로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가 실험 종료를 명령했고 이 실험은 막을 내렸다.
실험이 끝난 1972년 시점에서 생존자는 74명이었다.
피실험자의 아내가 감염된 경우도 있었고 아이가 선천적으로 매독에 감염된 상태로 태어난 가정도 있었다.
1997년 빌 클린튼 전 대통령이 피실험자를 백악관에 초대해서 사죄했다.
이 실험 이후 의사를 못 믿거나 원래 매독이 있었던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감염시켰다고 믿는 사람들도 생겨 병원을 기피하는 흑인이 늘었다고 한다.
이런 실험 사례는 1940~1960년대에도 종종 있었다.
가령 미국 주도하에 이루어진 성감염병 치료약 개발을 위한 연구에서는 과테말라에 있는 교도소 수감자들, 정신질환 환자, 성매매 여성들을 피실험자로 선정되었고, 의사가 연구를 위해 의도적으로 암세포나 간염 바이러스를 환자에게 감염시킨 사례도 있었다.
아무리 발전을 위해서라 하더라도 꼭 지켜야 하는 연구 윤리가 있을 것이다.
터스키기 사건에 대한 글을 읽게 되면 그 윤리는 완전히 특별하고 어려운 기준을 갖추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단지 인종이나 직업, 성별과 상관없이 사람을 대등하게 보는 시선만 있으면 어느 정도 보완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류의 미래를 위한 실험이었으나 여기서 말하는 "인류"에 포함되지 못했던 사람들의 희생과 억울함에 대해 앞으로도 종종 상상하고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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