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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크스
묘하게 긍정적인
by
Illy
Jun 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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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때 피아노 콩쿠르를 나간 적이 있다.
유명한 콩쿠르는 아니었으며 상을 타기 위해서가 아닌 과제곡을 연습하기 위한 출전이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피아노 연습을 정말 싫어했으며 사람들 앞에서 칠 기회가 있어야 연습을 하겠구나 싶었던 선생님의 권유도 있었다.
콩쿠르 당일.
아침에 선생님 차를 타고 공연장으로 가는데 그날따라 차멀미가 심하게 나서 도착하자마자 구토를 했다.
얼굴은 창백해졌고 선생님께서 사주신 물을 마셔보았지만 계속 속이 안 좋았다.
(
그때 말은 못 했지만 선생님 차에 있던 방향제 냄새가
고약해서 차멀미가 났던 거라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다.)
최악의 컨디션이었지만 피아노 앞에 앉으니 연습한 대로 잘 칠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좋은 성적을 얻어 본선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본선 결과는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니 딱히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기대는 안 했었
어도 좋은 성적이 나오니 기뻤다. 사람은 참 단순하다.
이 날 이후 우연히 몇 번 비슷한
패턴, 즉 안 좋은 일 다음에 좋은 일이 일어나는 패턴을 겪었다.
가령 아침에 엄마와 크게 싸웠는데 오후에 칭찬을 받을 일이 있었다, 숙제를 집에 두고 가서 학교에서 혼났는데 집에 가보니 간식이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였다... 등등
초등학생의 발상이라 약간은 억지스러운 느낌도 없지 않아 있지만 아무튼 안 좋은 일과 좋은 일은 하루 안에 세트로 일어난다는 징크스를 나는 믿게 되었다.
지금도 아침에 속상할 일이 있으면 콩쿠르 날을 떠올려 본다.
안 좋은 일을 겪어야만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부분이 슬프지만 그래도 꽤나 나를 긍정적인 상태로 유지해 주는 징크스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징크스의 연장선상에서 얻은 교훈(?)도 있다.
아침에
속이 안 좋고 힘들었다가 그 몇 시간 뒤에는 상을 받고 있었듯이 크고 작은 사건들은 계속 일어나면서 서서히 상황이 바뀐다는 점이다.
늘 어떤 형태로든 출구는 있고, 시작하면 끝이 날 거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거고, 못 빠져나올 것 같은 깊은 곳으로 떨어진다고 해도 사다리가 어딘가에 꼭 있다.
최악의 일을 겪으면서도 이렇게 발상의 전환을 한 초등학교 3학년의 내가 기특하기도 하고 언제 그 해맑음을 잃어버렸나 싶은 생각에 약간은
아쉬움을 느끼지만...
그래도 아마 아직 내 어딘가에 있을 당시의 나를 가끔씩은 소환할 수 있게 밝은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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