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홀로도모르
오늘은 1930년대 소련 국가들에서 일어난 대기근에 대해 우크라이나에서의 상황을 중심으로 정리하겠다.
〇사건 개요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등 몇몇 스탈린 치하에 있던 국가에서 총 약 600만 명이 아사한 대기근이 일어났다.
특히 희생자가 많았던 건 우크라이나였으며 그 희생자수는 약 350만 명이라고 한다.
이 사건은 홀로도모르라 불리는데 이는 우크라이나어 holodom, holod(기근, 기아), moryty(죽인다, 굶주리게 한다)를 합친 말이다.
〇희생의 원인들~공산주의 사상과 농업 집단화~
러시아는 1918년부터 우크라이나에서 수확된 농산물들을 징수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수확량이나 재산이 많은 농민들 "부농(富農)"을 나라에 농작물을 잘 팔지 않는다고 적대시하였고 그들을 강제수용소로 보내기도 했다.
20년대에도 크고 작은 기근 피해가 있었지만 사태가 가장 심각해지는 건 1930년 이후였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산 소맥으로 외화를 벌고 있었는데 곡물 징수가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스탈린은 "농업 집단화"를 추진하고, 처음에는 집단 농장에 들어갈지는 농민들의 선택이었지만 바로 강제성을 띠게 되었다.
농업 집단화란 말 그대로 개인이 아닌 집단이 한 농장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이로 인해 만들어진 집단 농장에서는 농기구나 가축 등을 농민들이 공유하고 농산물, 축산물을 생산한다.
농민들은 생산된 농산물, 축산물을 나라에 팔아 임금을 얻는데 이때 당연히 나라가 원하는 양을 생산하지 못하거나 나라에서 양에 비해 돈을 적게만 준다면 농민은 빈곤에 빠지고 바로 기아 상태에 빠지게 된다. 수확된 농산물들은 남김없이 나라가 가져가게 되고 농민들은 먹고 살기에는 부족한 적은 임금만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안 농민들은 싸게 팔 바에야 미리 도축을 하려고 농장 편입 전에 가축을 처분해 버리는 일도 흔했다(그래서 식량난이 더욱 빨리 진행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제도에 반항하면 끌려가고, 몰래 먹을 것을 빼돌리면 같이 일하는 이웃한테 고발당하기도 했다. 농민들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고 조금씩 일할 힘도 잃어 쓰러져 간다.
도시에 나가서 일을 하려 해도 불가능했다.
왜냐 하면 1932년에 우크라이나에 국내 여권 제도가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일하기 위해 마을을 나가거나 이주를 하려면 이 여권이 필수였는데 집단농장에서 일하는 농민한테는 여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먹지도 못하고 일하고 싶어도 일을 찾지도 못했던 농민들은 농장에 갇혀 그렇게 희생되었다.
2018년 우크라이나의 여론 조사에서는 우크라이나인의 79%가 이 대기근을 즉 학살로 인식하고 있다고 했고 최근까지도 계속 유럽 각국이 이 사건을 학살로 보자는 의견을 제시해 왔었다.
한편 러시아는 심각한 기아가 있었음은 인정한 상태였지만 인위성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2022년 12월, EU에서 이 사건에 대해 러시아의 인위적인 학살이었음을 인정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어 공식적으로 "학살 사건"이 되었다.
그렇다고 당시 괴롭게 삶을 마감한 사람들이 돌아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학살"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는 건 의미가 큰 것 같다(하지만 지금 러시아-우크라이나 상황을 보면 그 모든 게 무의미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