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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Jul 07. 2022

나의 최고의 연예인

<그 시절 그 사람: 이상은>

   초등학교를 다녔던 곳은 강원도 원주였다. 강원도이긴 하지만 원주는 서울, 경기도에서 그리 멀지 않아 강원도의 색깔이 옅었다. 사투리라고 할 만한 억양도 희미했다. 초등학교를 강원도에서 졸업했으면서도 나중에 <월 켐투 동막골>을 보고 나서야 강원도도 사투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원주가 서울에서 가깝더라도 강원도는 강원도여서 경주로 떠났던 수학여행에서 지나쳤던 아저씨들은 나도 잘 모르는 강원도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감자바위에서 왔구나, 하는 말들을 했고, 나 역시 강원도민은 강원도민이어서 그 말에 울컥하고는 아닌데요, 금바위인데요, 하며 발끈하기도 했다.


   강원도에서 자란 아이들이 순박해서였는지 그냥 우리 반의 분위기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가요보다는 동요를 가까이했다. 가끔 지루한 수업시간 중간에 담임선생님이 한 명씩 앞으로 불러내 노래를 시키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그 해의 MBC 창작동요제에서 수상한 동요들을 불렀다. 난 3회 대회 장려상이었던 <박꽃>을 주로 불렀다. 김범룡이 <바람, 바람, 바람>으로 가요톱텐에서 골든컵을 받아도, 나미가 <빙글빙글>을 부르며 뉴웨이브 댄스 열풍을 일으켜도 우리의 관심은 단연 동요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강원도를 떠나 경기도로 이사를 했다. 이제는 동요를 들을 나이가 지났다 생각해서인지, 연예인에 빠져있던 같은 반 친구들의 영향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동요를 듣지 않았다. 이정석의 <사랑하기에>를 들으며 사랑하기에 떠난다는 건 몹쓸 짓이라는 걸 배웠고, <나 항상 그대를>을 들으며 이선희의 불같은 사랑이라면 난 절대 피하지 않을 거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기도 했다. 친구들은 이상아나 소피 마르소의 사진을 코팅해 책받침으로 쓰며 팬심을 보였다. 그들을 따라 나 역시 코팅해서 책받침으로 쓸 연예인을 정해야 했을 때 이상은이 <담다디>로 세상을 뒤흔들었다. 별다른 고민 없이 벙거지를 뒤집어쓴 이상은의 사진을 코팅했고, 그렇게 이상은은 나의 첫 번째 연예인이 되었다.




   학년이 오르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의 연예인은 계속 바뀌었다. 양수경에게 한동안 빠져있다가 015B의 음악에 반하고, 김현철로 넘어갔다. 그러다 대망의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오면서 정착을 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이상은의 앨범을 사고 노래를 들었다. 3집의 <너무 오래>와 4집의 <뉴욕에서>를 닳도록 들었지만, 그건 내 주위에서 나만 아는 곡이었다. <담다디>의 스타일을 버린 이상은은 더 이상 예전의 슈퍼스타가 아니었다.


   재수생활을 하던 94년, 이상은을 처음 봤다. 누군가(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를 돕자는 모금행사가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렸는데, 당시의 유명한 연예인들이 스케줄이 비는 시간을 이용해 잠깐씩 얼굴을 비추고 가며 모금을 독려했다. 이종원이 인사를 하고 있는데, 이본이 손을 흔들며 지나가고, 구본승이 한껏 올린 열기를 허준호가 이어가는 식이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린 연예인은 진정 사람의 얼굴이 맞나 싶었던 장동건이었다. 이상은도 그곳을 들렀다. 몇 년 전에는 최고였지만, 지금은 최고의 자리를 내준, 나의 첫 번째 연예인의 사인 한 장을 어렵지 않게 얻어냈다. 장동건을 외면하며 이상은에게 다가가는 사람은 드물었으니까.


   그날 이상은은 무반주로 <소녀>를 불렀다. 역시 이상은은 이상은. 하며 감격해 듣고 있는데,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 다다랐을 때 이상은이 나에게 눈을 맞췄다. 그러고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나 항상 그대 곁에 머물겠어요. 떠나지 않아요.' 라 말했다. 몸은 얼어붙고 심장만 요동쳤다. 그날 나의 첫 번째 연예인은 나의 최고의 연예인이 되었다.




   아내와의 연애시절에 나는 계속 기회를 엿봤다. 자연스럽고, 뜬금 있어서, 음? 갑자기 노래를? 하지 않을 타이밍을 찾아내려 했지만, 만나는 대부분의 시간은 노래를 불러주기에는 갑작스러웠고 뜬금없고, 부자연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아내는 잠이 안 온다며 전화통화를 길게 이으며 끊으려 하지 않았다. 순간 깨달았다. 바로 지금이었다. 아내에게 <소녀>를 불러 줄 타이밍. 핸드폰을 마이크처럼 잡고, 노랫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녀>를 불렀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주는 노래라 눈을 맞춰줄 수 없다는 게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아내에게 항상 곁에 머물겠다는데, 떠나지 않는다는데, 아내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감동받지 않을까.


   노래를 마치고   한동안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사이의 적막이 이어졌다. 아내의 몸이 얼어붙고 심장이 요동치길 바라 부른 노래였는데, 적막 사이로  심장만 요동쳤다. 고음불가인  노래 실력이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차라리  음역대에 맞는 동요나 불러줄 . 아내는  후로 <소녀>    불러주기를 종종 요청했는데, 그날의 일은 잊으라고,  스스로를 너무 믿은 자만이 부른 참사였다고,  이미 잊어서 기억을  한다고 넘겼다.


   '응답하라 1988'에서 오혁이 <소녀>를 리메이크해 불렀고, 그러면서 원곡자인 이문세 목소리의 <소녀>도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왔다. 노래가 나올 때마다 아내는 그날 밤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마치 나 들으라는 듯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런 아내의 시선을 외면하며 난 처음 듣는 노래라고, 요즘 나온 신곡이냐고, 누가 부른 노래냐고 물으며 딴청을 부리지만 아내는 그때마다 밝게 말한다.

   "당신이 나에게 불러 준 당신 노래야."


   아내는 <소녀>를 들을 때마다 고음에서 부들거리던 내 목소리를 떠올리고, 난 내 눈을 맞추며 노래를 부르던 이상은을 떠올린다. 서로의 기억이 포개지며 한동안 나와, 아내와, 이상은과, <소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소녀>는 누구에게는 이문세의 노래이고, 누구에게는 오혁의 노래이겠지만, 아내에게는 나의 노래이고, 나에겐 나의 첫 번째 연예인이자 최고의 연예인인 이상은의 노래이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격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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