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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Jul 07. 2022

영구야, 노올자~

<그 시절 그 사람: 심형래>

   커서 개그맨이 되겠다는 사진 속 아들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낯설다, 누구냐? 넌. 자동차가 잔뜩 프린트된 파란 내복에 승리의 브이(V) 자를 흔들고 있는 모습은 여느 초등학교 1학년의 모습이었으나 일부러 눈을 콧잔등으로 향해 치우친 사팔뜨기의 모습은 해괴했다.  '저 사진을 언제 찍어줬더라...' 기억은 가물가물한데 기가 막힌 것은, 전형적인 개그맨이 될 상()이 아닌가! 참관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둘러보던 학부모 몇몇이 웃었고 나도 따라 웃고 있었다. '우리 아들 장래희망이 개그맨이었구나' 고개를 끄덕이다가 '참 웃기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장래희망은 다양해져 있었다. 학창 시절, 장래희망 난에 서로 짠 듯이 적혀있던 의사 판사 검사 같은 '사' 자 돌림의 직업군이나 선생님, 공무원 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여자 아이들은 연예인, 남자아이들은 프로게이머나 로봇 컴퓨터 관련 공학자나 과학자 등이 많았고 요리사, 헤어디자이너, 애견샵 주인... 같은 직종도 눈에 띄었다. 아들의 장래희망인 개그맨도 무대빨 조명빨을 받고 방송을 하는 직종이니 넓은 의미로 연예인 범주였다.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타고 있는 신세대다웠다.


   제 기분이 좋을 때면 제법 수다를 떨 줄 아는 아들은 가끔 개그맨 흉내를 내 식구들을 웃기곤 했었다.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이 흘러나오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개그계의 달인 김병만 흉내를 내기도 했고 '무를 주세요' 갈갈이, 골목대장 마빡이, 알까지 최양락까지. 천연덕스럽게 잘도 따라 하는 폼에 눈썰미 하나는 참 좋다 싶었다. 눈치만 있어도 사회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생각하는 사람으로서는 그것도 타고난 재주가 아닐까 생각되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따라 한다는 것, 무언가를 똑같이 표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방에도 나름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 모든 예술은 모방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 주의 깊게 관찰하기가 첫째이고 에지 있게 특징을 잘 캐치하고 뽑아내는 것이 둘째요, 자신만의 애드리브를 가미해 연출하고 창작하는 것이 셋째다. 하물며 '개그'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웃음'을 유발케 하는 일이 아닌가. 다른 사람의 감정선을 이해해야 하고 웃음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함부로 드러내도 불편하고 의도를 노골적으로 담아도 재미가 없다.


   누구를 닮아 저런 재능을 지녔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남편은 달변에 이야기꾼이나 유머스럽지는 않다. 그럼 DNA상 남은 것은 나 하나뿐인데, 돌이켜 보면 그래, 나를 닮은 것이 확실해 보인다. 학창 시절, 나는 모창과 성대모사에 능한 편이었다. 유머 프로그램을 본 다음 날, 흉내를 내면 주위에 있던 친구들은 까르륵 뒤로 넘어갔다. 자기들만 보고 듣기 아깝다고 오락시간에 나를 앞에 세우기 일쑤였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했던 나는, '이 한 몸 희생함으로써 너희들이 즐겁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생각하며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같은 트로트를 간드러지게 불러댔고 개그맨 흉내를 냈다.


  

   그중에서 특히 심형래의 '영구 없다' 흉내는 나의 전매특허였다. 바보 흉내를 낸다는 것이 쑥스럽고 창피한 일이었지만 그 생각만 버리면 흉내내기는 의외로 쉬웠다. 슬랩스틱 개그의 속성이 원래 그렇다. 자신을 내려놓기만 하면 쉬운 것.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었다.

교탁과 아이들을 등지고 선다.
칠판 아래  분필가루를 검지로 스윽 묻힌다.
콧구멍 아래부터 쭈욱 내리긋는다.
사팔뜨기 눈을 한 채 돌아서며 혀 짧은 소리로 한마디 한다.
"띠리리 리리리~, 영구 엇다!('없다'가 아니다. '엇다'라고 해야 한다)".


여기에 체육복 바지 한쪽만 걷어 올리기, 교탁 앞으로 나갈 때나 자리로 돌아올 때 넘어질 듯 비틀거려주기, 이빨에 김 붙이기나 왕점 붙이기 등을 덧붙인다면 무조건 웃음 보장이었다. 뜬금없이 "주민등록증 좀 봅시다" 들이대는 영구 버전도 인기였다. 이 말인즉, 너의 얼굴과 복장, 행동,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미였는데, 당시 80년대 군사정권의 불심검문을 패러디한 것이었다. 사회질서 확립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길거리나 시외버스 등에서 불시에 신분증을 요구받는 일은 불쾌한 일이었고 특히 우락부락한 외모의 남자들은 하루에도 몇 번의 검문을 당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이주일 씨처럼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고 자수하고 다녀야 할 판이었다.


   하여튼 심형래 따라 하기를 잘한다는 것은 굉장한 장기에 속했고 인기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동네 꼬맹이들이나 초등학교 아이들은 코흘리개 분장을 하고 혀 짧은 소리를 내며 길거리에서 맥쩍게 자빠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어른들은 '멀쩡하게 낳아놨더니 바보 흉내 내고 다닌다'라고 나무랐고 '장차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느냐'며 잔소리를 바가지로 쏟아냈다.


   심형래가 출연하는 영화나 코미디 프로는 연일 인기리에 상영되고 방영되었다. 아이들은 우뢰매 시리즈(1986년~93년)와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1989년~93년) 보러 영화관으로 갔고, 갈 수 없는 아이들은 비디오라도 빌려 봤다. 지상파 방송 <유머 극장> 하룡 서당을 시작으로 86년, 87년 <유머 1번지> <웃으며 삽시다> <개그콘서트> 등의 프로에 출연했기에 학교에 가면 전날 본 방송 얘기를 하느라 폭소 대잔치를 벌였다. 특히 '변방의 북소리' 코너는 슬랩스틱의 진수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어른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심형래의 인기는 실로 엄청났으며 "어린이날 우상을 뽑으면 1위 세종대왕, 2위 이순신 장군, 3위가 심형래"일 정도였다. 우상이라면 보통 옛사람들을 떠올리기 일쑤였지만 "살아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라고 심형래는 당시를 회고했다.*)



  

    80년대, 영구 캐릭터로 시대를 주름잡던 심형래는 90년대 들어서면서 독특하고도 특이한 행보를 이어갔다. 'SF의 거장으로 돌아왔다가 진짜로 레전드급 바보가 되었다'는 평을 들었던 '감독 데뷔'였다. 타라노의 발톱(1994년) 용가리(1999) 디 워(2007)등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꾸준히 제작하였는데 결국 1백억 원이 넘는 빚을 지며 파산함으로써 오죽하면 "바보 흉내 내서 번 돈, 바보짓으로 날렸다"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그의 행적을 영화감독이자 희극배우였던 찰리 채플린을 부족하게 모방한 인물이라고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었다.


   1999년,  심형래는 '지식인 1호'로 선정되면서 또다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IMF 경제 위기로 인해 국민들의 자신감,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정부는 '신지식인 운동' 캠페인을  벌여 능력과 노력으로 활동하는 3,000명가량을 신지식인으로 선정했고 천시받던 기술직이나 예능직들이 새로이 조명받는 계기가 되었다. 여세를 몰아 국정홍보처에서 제작한 CF에서 심형래는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니까 못하는 겁니다."라는 말을 해서 당시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2022년.

사람들은 바보 캐릭터로 웃기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그러니 당연히 심형래의 유행어처럼 '영구가 없는 시대', '영구가 사라진 시대'가 된 것이다. 한 때 개그맨이 되겠다는 장래희망을 가졌던 아들도 이제 개그맨이 되겠다는 생각을 버렸고 영구 흉내가 장기였던 나 역시 누군가를 웃기기 위해 바보 흉내를 내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가끔은 영구가 헤벌쭉 웃던 모습을 떠올리며 웃고 울었던 때를 추억하게 된다. 어떠한 의도도 담지 않은 순수한 개그에 모든 근심과 시름이 표백되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영구야, 영구야,  "영구야, 노올자~" 라고 외치면,

"영구 있다!"로 대답해주면 안되겠니?

"띠리리 리리리~"





*) 2022년 2월 27일. MBN <신과 한판> 방송에서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격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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