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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Jun 23. 2022

여행

< 작당모의(作黨謀議) 17차 문제(文題): 2122년 >



   사람들이 많다. 차도 많다. 나무도 많다. 공기는 생각보다 좋지 않다. 책에서 본 것 같은 표정의 사람들이 지나간다. 

   “죄송한데요, 오늘이 몇 일이지요?”

   6월 23일이요, 마스크 위의 눈이 크다. 아직 역병이 끝나지 않은 건가. 

   "2022년 6월 23일이요?" 

   그는 손의 네모난 기계를 들여다보며 끄덕였다. 아, 저게 이 시대에 유행했다는 스마트폰이라는 거구나. 제대로 오긴 왔구나. 이제 어딜 가서 사랑을 찾아야 하지? 아, 사랑은 하는 거였나?

   사랑을 향해 발을 뗀다. 21세기에 죽을 나, 나보다 먼저 죽었던 사랑을 향한다. 어디라도 좋다. 사랑이 있는 이 시대니까. 

  

   80억의 인구가 출렁거리는 지구는, 사랑과 연대까지 합쳐져 무겁기만 하다. 태양이 육중한 지구를 뜨겁게 달구는 6월이다. 같은 옷을 입은 여자들이 가방을 메고 웃음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웃음소리라는 것, 생각한 것보다 훨씬 듣기가 좋다. 커다란 차의 반쯤 열린 창문에서 어떤 음률이 흘러나온다. 노란 공차(公車)*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와 성인 여성들에게 안긴다. 엄마라는 존재를 실제로 보았다. 뜻모를 감동이 있다. '여기야'라며 손을 흔드는 남자의 시선 끝에 여자가 있다. 늙은 남자는 햇빛에 자신을 희생하고 늙은 여자는 희생의 대가를 얻는다. 노부부와 햇빛과 세월이 우산 위아래서 얽혀 앞을 향해 걸어간다. 한 뭉치의 바람이 나를 통과한다. 미량의 사랑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충분정에 약을 넣는 건가, 생각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모母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생명줄을 함부로 끊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자꾸 머리가 아프지. 식사로 요청을 해볼까, 무언갈 씹고 삼키는 건 귀찮고 힘든 일인데. 

   - 충분정 열 정 남았지? 더 준비해둘까?

   모에게서 문자가 왔다. 충분정은 스무 알도 넘게 남았다. 괜찮다고 답했다. 

   - 잊지 말고 챙겨 먹어. 사랑한다.

   모는 ‘사랑한다’라고 하고 얼마를 받을까. 나를 키우고 받는 급여에 ‘사랑한다 30회 말하기’가 포함이 된 걸까, 1회 할 때마다 장려*를 더 받는 걸까. 이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엄마’를 떠올려 본다. 

   나의 엄마는 얼마를 받고 나를 임신했을까. 내가 그녀의 배 속에 있을 때 그녀도 사랑이란 걸 느끼긴 했을까. 한때 사랑이 궁금해 20세기와 21세기의 소설을 열심히 읽은 적이 있다. 대략 어떤 것일지 감이 잡히긴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좋은 감정인 것 같긴 한데,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곧잘 미쳤다. 사랑해서 상처 주고 떠나고 아프게 했다. 사랑 때문에 사람도 죽였다. 

   과거의 사람들은 사랑을 말로도 하고 몸으로도 했다. 연인도 사랑하고 가족도 사랑하고 신도 사랑했다. 신을 사랑한 사람들은 지금은 종교 관리구역에 모여 있다. 구역 내 서로 다른 종교 종족이 전쟁을 하며 서로를 제거하고 있어 지금은 개체수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뉴스를 얼마 전 보았다. 신을 사랑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신은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인간은 아직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신을 들먹이며 서로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며 끝내는 죽였다. 그 과정을 거쳐 지금의 진리에 이르게 된 것에는 감사한다. 그러나 불필요한 과정을 거친 역사를 보노라면, 여전히 과거의 인간은 미개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가족을 사랑한 마음과 가족이 아닌 사람을 사랑하는 게 같을 마음일지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여전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사랑은 횟수이다. 사랑해,를 말하는 횟수만큼 사람들은 장려를 더 받고 덜 받는다. 사랑이 감정이라니... 갑자기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그 시대의 창소서(暢銷書)* 제목이 생각났다. 지금은 없어진 관념, 먹는 행위와 사랑과 기도가 그때는 중요했었겠지, 그러니 이렇게 공허한 제목의 책이 많이도 팔린 것이겠지.

   사랑만큼 궁금한 단어가 또 있다. 연대. 이전 시대의 글을 읽다 보면 연대도 많이 나온다. 사랑과 비슷한 단어인 것 같다. ‘사람들 간의 연대’라고 많이 쓰이는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 같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기분인 건 확실하다. 일대일끼리 하면 사랑, 일대다 또는 다대다끼리 하면 연대라고 나름 결론지었다. 그런데 일대일끼리, 다대다끼리 무얼 하지? 만나면, 모여 있으면 사랑이 되고 연대가 되나? 

   모에게 물어보길 포기한 지는 오래다.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건강하게만 자라. 부父는 사건이 있어야 만날 수 있다. 내가 쓰러지거나 연락이 되지 않을 때,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부는 나타난다. 사건을 처리하고 ‘사랑한다’라고 말하고 어디론가 간다. 나는 큰 문제없이 건강하게 자라서 부를 본 적이 거의 없다. 마지막에 부를 보았을 때 나는 팔뚝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분으로 그가 AI임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 부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아빠는 4차 화성 이주 때 화성으로 갔다. 모든 것을 부와 모를 통해 처리하고 있어서 아빠는 본 적이 없다. 사춘기를 지나며 아빠가 나를 생산한 이유가 ‘종족 유지 본능’을 따른 것이라고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아마 맞을 것이다. 그래서 최상급의 수정모를 선택했고 엄마는 나를 낳았다. 그 모든 비용은 나에게는 기밀이다. 이제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나는 잘 자랐고 잘 지내고 있다. 그러면 되었다. 

   아빠를 보게 된다면 묻고 싶은 것이 딱 하나 있기는 하다. 나를 왜 화성에 같이 데려가지 않았냐는 것이다. 종족 유지가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하려면 같은 행성에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러나 아빠는 나에게 묻지 않고 화성으로 이주했다. 나에게 한 번이라도 물어봤다면, 나는 ‘사랑’을 조금 실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 6차 이주까지 아빠는 묻지 않았다. 나는 지구에 남은 20억 인구 중 1인이 되었다. 

   아빠가 물었어도 나는 지구를 선택했을 것 같다. 화성의 공기가 지구보다 훨씬 좋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래도 아직은 나무가 뿜는 공기가 좋다. 좋아지려 노력하는 지구의 힘이 좋다. 미대륙의 쓰레기 처리는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이제 더는 2052년의 미대륙 재앙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그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있지만 역사는 열심히 그들을 지워간다. 산업혁명 이전 스페인, 산업혁명 이후 영국, 세계대전 이후 미국, 미대륙 재앙 이후 대중제국, 이런 건 역사가 만들어가는 거지 인간이 해내는 것이 아니다. 물론 미대륙 재앙 이전의 인간은,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단어가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대중제국은 인류의 지속적인 생존을 위해 화성 이주를 시행했고 그 도전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6차 이주가 끝난 지금 지구인과 화성인 모두 만족하고 있다. 대중제국은 지구와 화성을 모두 잘 관리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된다. 사실 별 관심이 없다. 나는 지구에 남은 것에 만족하고 있다. 어차피 어딜 가도 다 똑같다, 사람과 AI가 같이 사는 것은. 어딜 가도 사람은 큰 문제가 되지 못한다. AI가 문제이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AI의 문제도 결국 사람의 문제이긴 한 건가.

   화성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들 또한 범자(犯者)가 사람일 때도 있고 AI일 때도 있다고 한다. 여기나 거기나. 사람들 속에 잠입한 AI 경찰들 판별하는 법이 눈을 자세히 보는 거라는 걸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동공의 크기 변화가 없다나. 3년째 밖을 나가지 않는 나도 이런 걸 알지만, 굳이 밖을 나가 직접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밖에서 만나는 것은 자동차와 비행정과 판별경 없이는 사람과 구분할 수 없는 AI, 그리고 AI보다 가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 뿐이다.

   지난달 유럽연합국에서 발생한 일은 아직도 말이 많다. 살인 AI 범자를 AI 경찰이 풀어주고 그 경찰이 자진 분해해버린 사건. 모든 데이터는 삭제되고 난 후였다. 그때 기사에 ‘사랑’이란 단어가 나와서 그것도 말이 많았었지. 관념적이고 고전적인 단어가 기사에 쓰였으니. 그 기사를 읽은 나는 조금 부러워졌다, 사랑을 학습해 버린 AI가. 최소한 사랑이 어느 감정인지 알았다는 거니까. 

   - 어디 불편한 곳은 없니?

   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세 시간에 한 번씩은 문자가 온다. 

   - 네, 없어요. 

   - 그래, 어디 아프면 바로 말해. 사랑해.

   - 엄마.

   - 응?

   - 사랑이 뭐예요?

   - ......

   - ......

   - 내가 너를 생각하는 거란다.

   그냥 모른다고 하면 될걸. 모의 대답으로 나는 사랑에 대해 더 모르게 되었다. 그저께 쾌속지철(快速地鐵)로 해삼위*를 다녀왔다. 물론 아시아연합국러시아연방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나는 AI와는 하지 않는다. 두 배 더 비싸긴 해도 사람과 한다. 절정에 이른 순간에 나는 몇 번 사랑을 떠올리긴 했다. 혹시 이게 사랑인가. 그 순간 사랑이라 생각하는 감정은 바로 생겨났다가 바로 사라진다. 20세기나 21세기 초기 소설에서 보는 사랑은 몇십 년에 걸치기도 했었다. 죽은 후에도 이어지는 사랑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순간의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사랑을 해볼 방법은 하나뿐이다. 시광기(時光機) 탑승. 사용해본 사람들의 후기는 없다. 과거로 간 사람들은 돌아올 수 없으니 당연히 후기도 없다. 과거로 가면 지금을 잊고 과거의 사람으로 과거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 시광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전 재산을 국가에 환원하고 과거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 

   아시아 연합국에서는 지금까지 21명이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돌아간 연대는 여러 시대이지만 가장 많이 선택한 시대는 2000년 이후부터 아메리카 대재앙 직전인 2050년 사이라고 한다. 문명과 자연이 가장 조화로운 시대였다고 한다. 미국이 전 세계를 호령하는 세계가 어떻게 가능한 지 상상이 안 되지만, 어쨌든 세계는 나름의 평화를 누렸다고 한다. 초기 시광기 시험기인 '타임머신63'이 2063년 만들어졌다 하니, 시광기 시행 이전 시기여야 한다는 조건에도 거의 부합한다. 쓰레기 처리나 온난화 같은 미흡한 문제들이 있긴 했지만, 대체로 살만한 시대였던 것 같다. 

   2022년, 그때가 궁금하다. 대중제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세계적 전염병이 끝난 해였다. 그때의 대중제국은 전염병 하나 처리하지 못하는 국가였다. 그런 실패를 딛고 지금의 세계연합국을 만들어 낼 힘을 갖게 된 것이겠지. 어쨌든 사람들은 그때, 전염병이 끝나던 그때 다시 만나 사랑하며 연대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라는 이상한 영어식 발음의 전염병이 종식된 후 발표된 소설들에 유독 사랑이 많이 보인다. 이전 시대의 소설에서 느낀 광기 어린 사랑보다는 좀 더 부드럽고 온화한 감정이다. 질병을 거친 사랑, 그 또한 상급(上級)*된 것일까. 상급, 급. 사랑에도 급이 있던가. 폐철이 공정을 거쳐 AI로 거듭나듯, 거친 사랑이 역병을 거치며 다른 형상을 갖게 된 것일까.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는 이상 알 방법이 없다. 

   연대는 어떠한가. ‘연대가 시작되었다, 연대가 커지고 있었다. 우리의 연대는 여기까지였다, 연대는 이어지지 않았다’ 사랑처럼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된다. 사람들은 부단히 연대를 하고 키운다. 연대는 인간의 문명과 같은 생일을 갖고 있는 듯하다. 과거인들의 연대, 그 바닥에는 사랑이 누워 있었다고 어느 글에서 읽었다. 사회에 대한, 인간에 대한 사랑의 씨앗이 연대로 솟아났다고 했다. 결국은, 사랑인가.      

   - 엄마, 저 한동안 여행을 떠나요. 보충정은 더 준비 안 하셔도 돼요. 먼저 연락드릴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화성 아빠에게도 말씀하지 말아 주세요.

   사랑해요,를 썼다가 지웠다. 

   - 어디로 가니?

   - ...... 사랑이 있는 곳으로요.

   - 종교 관리 구역으로 가니? 거긴 위험해.

   - 아니요, 다녀오게 되면 말씀드릴게요.

   - 그래, 사랑 찾게 되면 뭔지 보여주렴. 사랑한다.

   다녀오게 되면. 이 가정형이 무쓸모 한 곳으로 간다. 시간의 방향이 일방적이었던 곳으로 향한다. 2022년으로 가면, 나는 60세에 미주 대재앙을 맞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겠지. 70세가 넘어 시광기의 탄생을 겪으며 혼란스러워하겠지. 2122년은 생각해 보지도 못한 채 21세기 안에서 마지막 숨을 내뱉겠지. 그러나 사랑과 연대가 있는 풍경을 살아보게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여행은 충분히 가치로운 여행이 될 것이다. 

   눈을 감고 깊은 호흡을 한다. 과거의 시간이 내 몸 아홉개의 구멍으로 들어온다. 나는 100년을 채 살지 못하는 몸으로 변하고 있다.      



號22
시광기 탑승 정보 건



탑승일자: 2122년 6월 23일 12시 00분

탑승자: 아시아 연합국 개인 국호 AD9012139825 윤한민

탑승 사유: 2022년 역병 이후 세계 관찰 및 인간의 감정 변화 단순 체험, 연구 목적 無

탑승전 조건: 저택 1 및 개인물품 일체 중화 세계시간 관리국 반환 완료

탑승 관련 특이사항: 부모 무지(無知). 주변인 관여 무

유언: 사랑합니다   




위의 정보는 중화 세계시간 관리국에서 20년간 보관 후 폐기됨     





2122.6.23. 아시아연합인민관리소조 



FIN





*공차: 버스

*장려: 인센티브

*창소서: 베스트셀러

*해삼위: '블라디보스토크'의 중국어

*상급: 업그레이드



- 대문사진 출처: 연합뉴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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