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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Jun 23. 2022

나무의 머리와 심장

<작당모의(作黨謨議) 17차 문제(文題) : 2122년  >

   이글거리는 태양, 뜨겁게 달궈진 모래사장이 뿜어대는 열기에 인호는 잠에서 깼다. 뒷머리부터 이마, 목에 이르기까지 땀이 흥건히 배었다. 밝은 해변가 비치배드에 누워 낮잠을 자다 일어난 설정이었으나 모습은 마치 악몽을 꾼 사람처럼 초췌해 보였다. 테이블 위 시원한 망고주스나 모히토 한잔을 찾듯 손을 뻗어 서둘러 알람을 끈다. 오늘 아침에 세팅해 맞춰 놓은 바닷가 상황 알람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시국에 해변이라니, 모히토라니... 이런 생각은 사치다. 한 그루의 식물이라도 살려야 한다. 바닷물에서 사는 식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미역처럼 크는 나무, 그러나 산호초처럼 단단한 나무, 과일이 열리는 나무, 잎사귀 넓은 나무, 잘리고 떨어진 잎이 도마뱀처럼 재생되는 나무, 잎을 뜯어먹을 수 있는 나무, 큰 나무, 작은 나무, 나무, 나무...


   바닷가에서 가족과 함께 게으른 휴가를 보내며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을 요즘 아이들은 모르겠지. 가족이라는 개념도 잘 모르는 아이들이니 바다에서의 수영, 자맥질 시합, 모래찜질, 모래성 쌓기, 파라솔 아래서의 낮잠, 붉은 노을, 조개껍데기... 이런 것들을 알리가 없지. 하물며 4,50대가 기억하는 바다는 공포스러움 그 자체일 테니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인호 역시 공포로 치를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2072년, 그 해는 가진 것의 절반을 잃은 해로 기록되었다. 지구 멸망으로 가는 첫 단계가 시작된 것이다. 가진 것의 절반을 잃고 그제야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땅의 절반을 잃었고 인구의 절반이 천재지변과 바이러스로 인해 사망한 뒤였다.  태양빛을 식혀줄 남극과 북극이 사라지면서 뜨거운 지구 위에서 동물과 식물의 개체수도 절반이 줄었고 사람들은 하루 중 절반의 시간만 밖으로 나와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 그마저도 방호복을 입어야 외출이 가능해지는 날도 많았다.


   

   아내와 딸을 잃은 것도 그 해였다. 그것도 고향 같았던 부산 바닷가에서. 모처럼 얻은 휴가 기간을 최대한 즐기라며 아내와 딸을 먼저 부산으로 보낸 것이 잘못이었다. 단 하루 차이였는데... 그 하루가 얼마나 긴 시간이라고, 하루 동안 얼마나 더 많은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는 일이 일어난 것을 뉴스를 통해 듣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비의 조짐도, 태풍의 예고도, 해일의 전조(前兆)도, 지진의 후폭풍도 없던 맑은 날이었다. 재난 영화 속 CG화면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믿고 싶었다. 산더미 같은 파도라니. 방호벽이 무너지다니. 하필 그 자리에 있었다니.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라 했다.


   절반의 확률게임에서 인호는 군 복무 중이었던 아들, 강인과 함께 정확히 50%의 가족 생존율을 기록했다. 세계 모든 나라의 시스템은 그때부터 선택에 의해 작동됐다. 가장 커다란 선택은 지구에 남느냐, 지구를 떠나느냐 하는 문제. 화성을 비롯한 다른 행성이나 지구의 깊은 곳에 자리한다는 고대 도시를 찾아 떠나느냐(비어있는 지구의 내부에 고대 도시와 부족이 살고 있으며 들어가는 문이 남극과 북극에 존재한다고 믿는, 일명 '텅텅이족'의 논리), 지구에 계속 남아 있느냐를 선택하게 했다.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철저한 신분 검증 절차를 밟았다. 신분 체계에 따라 살 곳과 주거형태, 물과 먹을 것, 세금 징수와 복지 혜택, 금지와 자유 등의 세부항목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었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라는 감옥에 인간이 갇히고 있다고 언론은 연일 보도했지만 시스템은 계속 정교해지고 세밀해갔다.


   신분증에 표시된 I(Insider)와 O(Outsider) 그리고 B(Between)에 따라 사는 구역이 정해졌고 사회적 대우와 혜택, 경제적 지원 등이 달리 책정되었다. I와 O은 직업과도 관련 있었다. 지구를 지키는 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느냐가 가치 기준인데 예를 들어 과학 의료 로봇기술 동식물학 생명 유전 등과 관련된 직업군이 I에 속했다. 특히 I 부류는 자녀를 가질 수는 있으나 자연분만으로 낳을 수 없었으며 양육은 국가가 전적으로 맡아했다.


   해마다 갱신되는 신분 신청에서 강인은 또 B구역을 결정했다. 신분이 확실하고 검사와 검열을 통과하면 I와 O 구역을 오갈 수 있는 구역이었다.

 "왜 굳이 그곳에서 살려는 거냐? 여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의사라는 직업이 안전한 생활을 보장해 줄텐데 말이다." 인호는 아들이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제가 원래 좀 삐딱하죠. 하라는 대로 하기 싫어하는 거 아시잖아요? 무엇보다 거기서는 술과 담배를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사람 사는 것 같거든요. 사람이랑 같이 사는 게 좋아요. 아픈 곳을 만져주기도, 눈물을 닦아주기도, 볼을 서로 비비기도, 마음에 안들 땐 한 대 치기도 하면서 사는 거죠. 감정 소모가 꽤 큰 편이지만, 뭐, AI애완동물을 껴안고 사는 것보다는 훨씬 멋진 삶이죠." G구역에 버려진 AI들의 잔해물들과 폐기물들을 떠올리며 강인은 부르르 치를 떨었다. 마치 살(殺) 처분된 돼지와 닭들의 사체에서 흘러나오는 핏물과 침출수와 비린내를, 그 흔적들을 지우기 위해 뿌려진 석회가루를, 거기에 찍힌 발자국과 바큇자국을, 자국들마다 새겨진 인간의 이기(利己)를...


 "그나저나 아빠는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으셨는데, B구역으로 오셔서 저와 함께 1년이라도 함께 사실 생각은 없으세요? 그곳에는 미래보다는 옛날을 추억하며 사는 분들이 많죠. 어쨌든 인류는 살아남아서 살아가겠지만 미래를 기약하지 않는 사람들이죠."

 "그렇구나, 2022년에 태어나서 50년을 살았고 2072년, 몹쓸 일을 겪고 혼자 산 지 또 50년, 2122년도 이제 저물어 가는구나. 나 역시 미래에 대한 삶의 의지는 없단다. 백 년을 넘어 살면 무지 고독한 법이거든. 그러나  너희들의 미래에는 관심이 많지. 인류는 살아남아서 살아진다고 네가 말한 것처럼 제법 그럴싸하게 다시 살아져야 하지 않겠니? 내가 나무를 심고 가꾸고 바닷물을 먹고 자라는 미래의 나무를 개발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성공이 바로 코 앞이란다, 얘야."

 "와, 드디어 해내셨군요. 그 나무들이 우리의 미래로군요. 파티라도 열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숲은 너희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의 심장이란다. 머리와 심장이 작동을 하면 인간은 살아지지. 브레인은 차고 넘치지만 인류를 평화롭게 하는데 기여하지 못했어. 심장이 뜨겁지 못했기 때문이야. 머리와 심장은 함께 뛰고 뜨거워져야 하는 거거든. 내 할 일은 거의 마쳤으니 이제 네 차례란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혹시?..."


런던 킹크로스역과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있는 9와 4분의 3 승강장.


   인호는 나무에 대한 프로젝트가 거의 끝나갈 무렵, 정부에서 실험 참가자를 모은 '영혼 여행'에 신청서를 제출했었다. 100년을 더 살 이유도 없었기에 프로젝트의 실험을 과거로 돌아가 미리 실현시켜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지구의 종말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내와 딸을 죽음으로 내몰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웜홀을 이용하여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여행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 다른 시간 속으로 가는 것은 선택할 수 있지만 되돌아올 수는 없었다. 게다가 미래로의 여행은 허락되지 않았다. 오직 과거로의 이동만 가능했다. 연구소의 성림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웜홀 여행은 지금 세계에서는 죽음을 의미하는 거예요. 그건 알고 있겠죠?" 웜홀 앞에서 성림은 나지막이 인호에게 물어왔다.

 "물론이지. 그러나 그건 죽음이 아니야. 육체에서 벗어나 영혼의 자유를 찾는 거라고 생각해. 물론 웜홀을 통과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기억들이 지워져 버리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말이야. 그러나 너의 영혼과 나의 영혼이라면 기억이 지워진다고 해도 서로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영혼은 말과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걸 텔레파시라고 불렀다지요?"

 "그냥 텔레파시라고 불러도 무방하겠지..."

 "정말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 성림은 다시 물었고,

 "분명히 그럴 거야. 나무, 나무, 나무... 먼 데서부터 이런 소리가 들릴 게 분명해."

 "나무, 나무, 나무... 자 그럼 나무를 생각하면서 떠나 볼까요?"


   인호와 성림은 웜홀 속으로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갔다. 2022년 인호와 성림이 태어난 그 해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무, 나무, 나무..."  웜홀 가득 공명(共鳴)이 일었다.


미역처럼 크는 나무, 그러나 산호초처럼 단단한 나무, 과일이 열리는 나무, 잎사귀 넓은 나무, 잘리고 떨어진 잎이 도마뱀처럼 재생되는 나무, 잎을 뜯어먹을 수 있는 나무, 큰 나무, 작은 나무, 나무, 나무, 나무...

노랫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 사진 출처: 영화 <아바타>의 이미지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격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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