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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Aug 24. 2022

꼴 보기 싫은 식탁

어릴 적 내가 그랬다. 제육볶음은 고기만 골라 먹고, 된장찌개는 국물만 떠먹었다. 두 세 숟가락만 더 먹으면 밥공기가 비는데, 습관처럼 남겼다. 내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면 엄마는 그거 조금을 남긴다고, 한 숟가락만 더 먹으라고 짐짓 엄한 눈빛으로 나를 붙잡았지만, 그땐 이미 엄마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들을 나이는 아니었다.


밥을 다 먹으면 바로 방으로 들어간다거나,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어서 엄마가 식탁을 정리하시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건대, 식사를 마친 내 자리의 흔적은 아마도 이랬을 거다. 고기에서 떼어낸 비계가 외면받은 당근과 섞여있는 제육볶음, 건더기만 남은 된장찌개, 빨간 양념이 군데군데 묻어있는 먹다 남은 밥. 엄마는 식탁을 치우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 너절한 식탁이 얼마나 꼴 보기 싫으셨을까.




지난주보다 비싸진 애호박 가격표를 보며 카트에 담을지 말지를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된장찌개도 먹고, 호박전도 만들어 먹자며 한 개를 집어 들었다. 된장찌개에 두부가 빠지면 안 되니 두부도 한모 카트에 담았다. 오늘 저녁 메뉴는 된장찌개다.


재료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다.

음식을 직접 만들기 시작하면서 제육볶음의 당근도, 된장찌개의 애호박과 두부도 남겨 버려져서는 안 되는 당당한 주인공이라는 걸 알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찌개 국물의 감칠맛을 담당하는 멸치와 다시마 역시 조연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하다. 이들이 모두 제 역할을 해내야 한 끼니의 된장찌개가 만들어진다. 재료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다.


15분의 기다림.

된장찌개의 기본은 뚝배기다. 그래야 더 맛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기에는 분명히 더 좋다. 뚝배기에 다시마와 멸치를 넣고, 가스불을 켠다. 물이 끓어오르면 다시마는 건져내고 멸치만 약한 불로 15분간 더 우린다.


집에 멸치가 떨어져 갈 즈음이면 장모님이 손수 다듬어 다시 한가득 채워 주셨는데, 다 떨어진 이번엔 별말씀이 없으셨다. 하는 수없이 국물용 멸치 한 봉지를 사고, 아내와 식탁에 마주 앉아 머리를 떼고 배를 땄다. 센 불에 한번 볶아야 비린내가 없어진다 해서 손질한 멸치를 두 번에 나누어서 볶았다. 멸치를 센 불에 볶는다는 건, 비린내를 없애는 게 아니라 미리 빼내는 거였나. 멸치 비린내로 숨이 막혔다. 집안에 멸치 비린내가 없어지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이런 걸 넙죽 받아먹었다니. 장모님에게 죄송했다.


몸값 비싼 애호박과 두부.

냉동 손질된 꽃게를 된장을 풀어낸 뚝배기에 넣는다. 꽃게는 된장과 궁합이 좋다. 탱탱한 꽃게 살도 좋긴 하지만, 꽃게의 주된 역할은 찌개 국물의 고소함을 책임지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꽃게라는 이름값에는 미안하지만, 꽃게는 멸치나 다시마와 다를 게 없다.


이제 어릴 적 엄마의 식탁에서는 관심도 없던 두부와 애호박 차례다. 두부와 애호박은 된장찌개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한다. 심지어 냉동 손질 꽃게보다도 한수 위다. 이 비싼 애호박과 두부를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야 했던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엄마에게 죄송했다.  


완성.

된장찌개 안에서 잘 익은 애호박을 보면 마트에서 애호박을 집어 들었을 때의 가격표가 생각나고,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으면 멸치의 배를 따고 센 불에 볶고, 비린내를 참아내던 일주일의 시간이 떠오른다. 어느 하나 내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다. 두부 한 조각, 꽃게 한 덩이 모두 소중하다. 그것들이 모여서 한 끼니를 책임진다.


아내와 나의 밥공기가 모두 비워졌는데, 뚝배기 안의 된장찌개가 조금 남았다. 비용과 시간과 노력과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 식탁에서 남겨지는 모습을 보는 건 마음 아프다. 뚝배기를 기울여 남은 국물을 뜨고, 밥공기에 붙어 있는 밥풀을 뗀다. 그제야 식사가 끝난다. 어릴 적 엄마의 식탁에서처럼 소중한 음식이 남는 일은 없다.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이 보기 좋다. 꼴 보기 싫은 식탁은 이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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