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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Dec 22. 2022

해피 크리스마스

< 작당모의(作黨謨議) 크리스마스 특집: 나 홀로 집에>

   아내와 나의 생일은 하루 차이다. 따가운 여름 햇빛에 아직 물들지 않은 잎들이 연두연두한 봄날, 아내의 생일이 먼저이고, 그다음 날이 내 생일이다. 아내는 단 하루 차이의 생일을 우리에게만 의미를 가진 다른 몇 가지 것들과 묶어서 우리의 인연이 특별하다는 증거로 꼽으며 신기해하는데 사실 하루 차이의 생일이란 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그리 낮지 않은 확률의 일이다. 길거리를 걸으며 옆으로 365명만 지나 보내면 그중 한 명은 나보다 하루 먼저 생일인 사람인 정도의 확률이니까. 카타르 월드컵, 4만 명이 꽉 찬 관중석을 비추는 카메라 안에 나보다 하루 먼저 생일인 사람이 100명이나 되는 정도의 확률이니까.


   아내의 생일이 나보다 하루 뒤였어도 특별한 인연이라는 아내의 논리는 변함이 없었을 테고, 더 극적으로 둘의 생일이 같았더라면 우리가 전생에 서로 백만번은 옷깃이 스쳤을 인연이라고 주장했을 테다. 누군가의 생일이 내 생일을 앞뒤로 감싸는 그 3일 중 하나일 확률은 더 높아져서, 옆으로 고작 100명만 지나 보내면 만나게 되고, 월드컵 경기장 안에는 300명이나 있을 만큼 흔한 일이다.


   이런 확률을 들이대면 아내는 굽히지 않고 반격한다. 월드컵 경기장 안에 300명의 의미 있는 생일을 가진 사람이 있는 건 맞지만, 그 300명 안에는 웃통을 벗어 가슴 털을 풍성히 드러낸 채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아저씨도 있고, 90분 경기가 지루해 전반전부터 꾸벅꾸벅 조는 할아버지가 있고, 축구 경기보다는 손에 든 핫도그에 더 관심을 두는 꼬맹이가 있을 거라고. 어쩌다 여자가 있더라도 잘 생긴 조규성의 이름을 외치느라 다른 남자에게는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을 거라고. 그런 사람들을 다 제하고 보면 하루 차이 생일의 두 사람이 인연이 된다는 건 월드컵에서 한국이 우승하는 것만큼이나 낮은 확률이라고.


   그래? 그럼 이건 어때? 전국에 예식장 수는 1,000개는 될 거고, 그곳에서 하루에 한 번씩만 식을 올린다 해도 우리처럼 생일이 가까운 부부는 하루에만 10쌍이 생기는 건데. 그러니까 최근 1년 사이에 한국에서만 우리와 같은 부부가 3,650쌍이 생긴 건데. 한국이 월드컵 우승을 언제 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때까지 우리 같은 부부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생길 텐데.


   이런 말이 스멀스멀 머릿속에 차오르는 걸 꾹꾹 눌러 깔아뭉갠다. 대화에 숫자가 많아질수록 아내의 심기를 건드릴 확률이 높아지니까. 나 역시도 이런 재수 없는 이과적 사고를 하는 내가 점점 싫어지고 있으니까.

 



   아내와 생일이 하루 차이어서 좋은 건 생일 준비가 번거롭지 않다는 것이다. 생일 케이크 하나로 둘의 생일을 기념하는데, 사온 케이크를 아내의 생일 늦은 밤에 꺼내 촛불에 불을 붙여 아내의 생일을 기념하고 밤 12시가 넘으면, 초 6개를 더 꽂는 걸로 다음날의 내 생일을 맞는다. 하지만 그마저도 지금은 하지 않는다. 아내도 나도 케이크의 단 맛을 그리 좋아하지 않고, 무엇보다 케이크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


   생일날이 다가오면 둘의 생일을 포함하는 일정으로 가볍게 여행을 떠나는데, 이제는 여행지에서도 딱히 서로 생일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럴 수 있는 건 내가 생일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인데, 어릴 때부터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일을 왜 축하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축하라는 건 뭔가 브런치 북 대상을 받았다거나, 브런치 메일을 통해 출간 제안을 받았을 때 건네는 게 아닌가. 어제나 오늘에 비해 좋은 쪽으로 다를 내일을 기대하게 할 만한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건네는 것이 축하 아닌가.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무조건 한 번은 돌아오는 날이 그런 기대를 들게 하지는 않지 않은가.


   같은 이유로 남의 생일도 축하한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역시도 달력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쉬는 날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일을 하지 않는 지금은 그 마저도 의미가 없어졌다.) 내 생일도 그리 즐기고픈 마음이 없는데, 2,000년이나 오래전에, 그것도 지구 반대편에서 태어난 외국인의 생일을 축하하고 축복할 만큼의 흥이 들지 않는다. 믿음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왜 이럴까. 그냥 웃고 즐기고 기뻐하며 넘기면 될 것을 굳이 따지고 있을까. 납득이 되지 않더라도 그냥 넘겨버리면 그만인 이유들을 왜 붙들고 있을까.



   

   이런 시니컬한 글 쓰면 안 좋은데. 이번 글의 주제가 크리스마스 특집이고, 그러니 크리스마스에 걸맞게 크리스마스 트리에 걸어 놓으면 어울릴 꽁냥꽁냥한 글이어야 하는데, 나 홀로 집을 지키던 매컬리 컬킨의 활약처럼 유쾌한 글이어야 하는데, 아무리 떠올려봐도 크리스마스 케이크처럼 달달한 기억이 없어서. 크리스마스 즈음엔 거의 나 홀로 집에 있었어서.


   철없고 생각이 짧았던 어릴 적에만 그랬어요. 어릴 땐 다들 그렇잖아요. 안 믿으실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절대 그렇지 않아요. 지금 거실 한쪽엔 작지만 크리스마스트리도 놓여있고, 거실 창에 세명의 동방박사가 쫓았던 별 모양의 조명도 걸려 있어요. 이제는 저도 즐겨요. 나 홀로 집에 있지 않아요. 다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뭐 하세요? 무엇을 하시든 해피하고 매리하기를 바랄게요. 기쁘고 좋은 날이니까요.

 

   하아. 분위기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나요?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격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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