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당모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현 Nov 17. 2022

스타벅스에서 (3)

< 작당모의(作黨謀議) 21차 문제: 무조건 이어 쓰기 2 >

이어지는 글입니다.




   언젠가 병철씨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스타벅스가 좋다고. 난 그 말이 반가워서 스타벅스가 왜 좋은지를 냉큼 물었다.

   늘 같은 곳이어서 좋아. 회사 앞 스타벅스든 외국 여행 중 들어가는 스타벅스든 매장 안으로 들어가면 거긴 그냥 스타벅스야. 같은 인테리어에 같은 맛의 커피가 있어. 그곳은 내가 여행 중인지, 일하는 중인지를 잊게 해. 그게 편안해.

   그의 대답에 난 마음이 조금 상했다. 내가 두 번의 지하철과 두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편도로만 세 시간이 걸리는 스타벅스를 찾아가는 이유는 그곳이 집 근처 스타벅스와는 다르기 때문이었다. 나는 스타벅스와 어울리는 전깃줄과 청설모가 좋은 건데, 그는 같은 인테리어라서 스타벅스가 좋다고 했다. 나는 한국 스타벅스의 탄 맛이 좋은 건데, 그는 같은 맛의 커피라서 스타벅스가 좋다고 했다. 스타벅스는 모두 다르다. 다르기 때문에 좋은 곳을 그는 같아서 좋다고 했다.

   그는 나와 달랐다.


   프러포즈를 하던 날 그는 여유로웠다. 정해진 일 처리를 하는 듯했다. 식당에 가면 주문을 하고 음식을 먹고 나가면서 계산을 하는, 그 정해진 일 중의 무언가를 하는 것처럼 느긋했다. 만나고 연애하고 프러포즈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뒷 일로 넘어가기 위해 앞의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라는 말을 듣고서도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반지가 아니라 시간을 준비해 올 걸, 하는 농담을 해서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프러포즈 이후 나는 그와의 만남이 불편했다. 빚을 진 느낌이었다. 빨리 답을 주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내 걱정일 뿐이었다. 그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이미 답을 받은 것처럼 행동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했으니 시간을 주었고, 시간을 주었으니 모든 게 해결될 거라 믿는 듯했다. 영심이가 말했던 것처럼 난 완벽한 것에서도 틈을 찾는 사람이었다. 그는 갈라진 틈에서도 완벽을 믿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와 많이 달랐다.




   토요일, 일찍 집을 나섰다. 탄 맛의 돌체 라떼 그란데와 치즈케이크가 있는 곳, 전깃줄이 어지럽게 하늘을 긋고 길 위의 청설모가 어색하지 않은 곳, 따뜻한철님이 있는 곳. 지하철 두 번, 버스 두 번을 갈아타고 편도로만 세 시간이 걸리는 내 비밀의 장소로 향했다.

   지하철 두 번을 타고 버스로 옮기기 전, 근처 도서관을 들렀다. 치아만다 응고지 아다치에의 책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도서관에는 그녀의 책이 없었다. 지하철을 반대로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치아만다 응고지 아다치에의 책이 꼭 필요했다. 서점에 들러 그녀의 책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샀다. 이미 읽은 책이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 책은 그의 취향과 나의 취향이 다르지 않다는 증표였다.


   스타벅스 안은 한산했다. 돌체 라떼 그란데와 치즈케이크를 주문했다. 낯익은 얼굴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왔다. 푸른 눈과 노랑머리에 시골과 어울리는 수염을 가진, 충남 옥천 출신 외국인이었다. 괜히 반가워서 인사를 할 뻔했다.

   따뜻한철님은 언제 올까. 어쩌면 안 올지도 모르지. 반드시 올 거야. 안 오더라도 괜찮아. 들고 온 소설집이 영 읽히지 않았다. 치즈케이크 빈 접시를 치우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그가 스타벅스 안으로 들어왔다. 여전히 촌스러운 복장이었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 한잔이요. 바닥에 고요하게 깔리는 중저음의 목소리. 가슴이 두근거렸다.

   테이블 위에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그에게 잘 보일 방향으로 올려놓고, 두 테이블 건너에 앉은 그를 힐끔힐끔 바라봤다. 내가 그를 알아봤듯이 그도 나를 알아보기를 바랐다. 그는 노트북만을 바라봤다.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손에 들고, 화장실을 가는 척, 테이블을 옮기는 척, 텀블러를 고르는 척하며 매장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난 놀라 멈춰 섰다. 그는 내 눈 한 번, 손에 들고 있는 책 한 번, 다시 내 눈 한 번을 보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나를 알아본 걸까. 일어나서 나에게 다가올까. 다가와서 손을 내밀며 만나고 싶었다고 말해 줄까. 그가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등이 완고하게 느껴졌다. 한 발짝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한 발짝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내게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속으로 외쳤다. 내가 용감이에요. 그는 대답이 없었다. 당신을 만나러 왔어요. 내 말이 그에게 닿지 않았다.




   병철씨는 세 시간 거리의 스타벅스에 다녀온 걸 잘 이해하지 못했다. 자꾸 그 동네는 왜?라고 물었다. 그냥 스타벅스에 다녀온 거야,라고 말해도 그러니까 그 동네는 왜 간 거야? 하고 거듭 물었다. 세 시간의 여정이 단지 스타벅스가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 동네에 친구가 살아, 하고 말했더니 그제야 아, 하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브런치 앱을 열었다. 피드에 새로 올라온 글이 없었다. 습관처럼 따뜻한철님의 메인으로 들어갔다. 프로필 사진이 바뀌어 있었다. 클릭해서 보니 우리가 스쳤던 스타벅스였다. 가슴이 덜컥했다.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우리 함께 이곳에 있었죠. 그때 브런치 알람이 울렸다. 따뜻한철님이었다.  

용감님은 전혀 용감한 분이 아니네요.

   이게 무슨 말이지? 말장난인 건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를 보고 지었던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설마 그가 나를 알아본 것인가? 나처럼 그도 나를 느낀 걸까? 그의 말이 반가웠다. 탓하는 말이 탓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 역시 용감하지 않았으니까. 그도 먼저 손 내밀지 않았으니까. 다시 브런치 알람이 울렸다.

용감님은 첫날 스타벅스에서도 도망치셨죠.

   첫날 스타벅스? 순간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첫날 스타벅스라면, 그의 노트북 화면을 슬쩍 봤던 그날을 말하는 건가. 그게 다였잖아. 그는 내 쪽을 보지도 않았는데. 봤더라도 어떻게 나인 줄 아는 거야. 이미 나를 알고 있었어? 그럴 리가 없잖아. 얼굴에 열이 올랐다. 다시 브런치 알람이 울렸다.

용감님은 프러포즈도 결국 받아들이겠죠. 정작 도망쳐야 할 곳에서는 도망치지 않는군요.

   숨이 턱 막혔다. 심장이 빠르게 요동쳤다. 프러포즈받았다는 걸 그가 어떻게 알고 있지? 주고받았던 댓글로 말한 적이 있던가? 아니다. 절대로 그런 적이 없다. 덜컥 겁이 났다. 낯선 두려움이 몸을 감쌌다. 식은땀이 났다. 손이 떨렸다. 다시 브런치 알람이 울렸다. 놀라서 들고 있는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몸이 굳어 핸드폰을 다시 주워 들 수가 없었다. 바닥에 웅크린 핸드폰에서 다시 한번 브런치 알람이 울렸다.


[4부에 계속됩니다.]



작당모의 이번 주제는 '무조건 이어 쓰기' 두 번째입니다.

오늘 이 글이 발행되는 순간까지 다른 세 분의 작가님(Faust, 진샤, 소운)들은 제가 무엇을 어떻게 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첫 번째 진샤 작가님, 두 번째 소운 작가님, 세 번째 저의 글에 이어 '스타벅스에서' 4부는 Faust 작가님이 쓰실 예정이며 11월 21일 (월) 발행 예정입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격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매거진의 이전글 스타벅스에서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