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른다섯

ENTP(J)의 속마음

외향형 중 가장 내향형

by 흐를일별진



1)


뭔가를 쏟아내고 나면 늘 이상한 기분이 든다. 내 이야기랍시고 남에게 나를 드러내면 어딘가 뒷맛이 찝찝하다. 그게 진짜 내 이야기이든 내 이야기를 가장한 수박 겉핥기든 혹은 목격담이든 '나'라는 소재가 조금이라도 섞이면 늘 잠을 설치게 된다. 분위기에 휩쓸렸거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나'를 이용했을 때, 그러한 불안감은 더 심해진다. 괜한 말을 했다는 후회다.



2)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지다가 어느 순간 '이대로면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때는 다급하게 어두운 공백을 떠올리거나 머릿속으로 '그만'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며 생각을 컨트롤하려 애쓴다. 그래도 안되면 종이와 펜을 꺼내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감정을 작성하기 시작한다. 마음을 글로 옮기는 순간 생각의 속도가 느려진다. 종이에 옮기는 생각은 글씨체가 거슬려 힘주어 쓰다 보면 느려지고, 손의 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결국에는 느려지던 생각이 멈추게 된다. 컴퓨터로 쓰는 생각은 오타와 빨간 줄이 신경 쓰인다. 글을 쓰면서 DJ처럼 낭독하는 습관이 있다 보니 글의 허점이나 문제가 눈에 보인다. 아무렇게나 쏟아낸 생각들은 문장을 다듬는 과정에서 정제되다가 결국 내게서 멀어진다. 휴대폰 메모장에 쓰는 글은 배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일단 쏟아내고 또 쏟아낸다. 그러다 퍼뜩 다른 어플이 눈에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딴짓'으로 멀어진다.

가끔 생산적인 생각이나 좋은 글이 떠오를 때도 있지만 주로 나를 찾아오는 생각은 대다수가 끊어내야 할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매 순간 생각의 달리기를 하면서도 언제든 그것을 끊어낼 준비를 해야만 한다.



3)


잠이 오는데 또 잠이 안 온다. 자야 하는데 잠들기가 아깝다. 눈이 감기는데 눈을 뜨고 싶다. 혼자 있는 시간이 짧았던 날 일 수록 잠드는 게 늦어진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게 힐링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술을 마시고 재밌게 노는 게 힐링이자 쉼이라고 하는데, 내게 그건 그냥 관계일 뿐이다. 내 힐링은 온전히 혼자 있어야만 가능하다. 약속은 약속일뿐 궁극적으로 나를 위한 시간은 아니라고 느껴지는 거다. 사회 속의 나를 위한 일일 지언정 내 안의 나를 위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밖에서 사람들과 보낸 시간만큼 혼자 있는 시간이 확보되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하루를 통째로 날린 기분이 든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어릴 땐 이러한 내 성향을 제대로 몰랐다는 거다. 그러니 몰아치듯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끼며 잠수를 타버렸다. 아주 극단적으로!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알아가면서 내 쉼을 위한 기준점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밖에서 이 정도 놀았으면 나만의 시간이 이만큼 필요하다는 걸 알기에 내 일상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큰 발전인가.

그래서 나는 내 나이가 너무 좋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도 관계에 대한 불안을 느끼지 않는, 어느 정도 관계에 초연해진 지금이 정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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