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른다섯

저는 성덕입니다

봄날의 기억

by 흐를일별진



늘 쓰고 싶었던 글이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이 글은 돌고 돌아, 끝내 꿈을 이룬 성덕의 기록이다.




처음 그들을 알게 된 건 2016년이었다.

스무 살에 만난 대학 친구 두 명과의 제주 한달살이 중이자, 내가 서른이 되던 해의 봄날이었다. 제주의 밤은 서울의 밤과 달라서 정말 조용했다. 그러나 조용히 잠들어도 다음 날 아침이면 낄낄거리는 친구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다. 처음엔 그러려니 넘겼는데 언젠가부터 그 웃음의 근원이 궁금해졌다.

한 번은 일어나지도 않고 뒹굴뒹굴하며 등을 보이는 친구의 곁에 찰싹 붙었다. 그리고는 물었다. 뭘 보고 그렇게 웃고 있냐고. 친구는 같이 보자며 몸을 돌려 영상 하나를 보여줬고, 나는 그렇게 그들과 처음 만났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나는 매일 아침 친구와 함께 그들의 영상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걱정과 근심, 모든 고민이 그들의 영상 앞에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영상으로 정제됐을 그들의 가벼움이 오히려 주변에 긍정적인 기운을 주는 것만 같았다. 이후 우리의 모든 제주 일정엔 그들의 노래가 함께했다.


아름다웠던 그 날, 그 봄날의 기억은 지금도 노래 선율과 함께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들이 그 노래로 1위를 하던 순간도 말이다. 그들과 나의 첫 만남. 나의 서른 살, 제주에서의 봄은 그렇게 노래로 기억에 남았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장르를 굳이 꼽자면 인디에 가깝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안테나 뮤직 스타일의 노래를 좋아한다. 팬픽을 쓰고 CD를 사고 사소한 거에 울고 웃으며 아이돌을 좋아했던 건 열여덟의 동방신기가 마지막이었다. 그러다 보니 뒤늦게 찾아온 아이돌에 대한 호감이 생소하면서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그들의 노래는 아이돌 그 이상이어서, 제주에서 돌아온 후에도 긴 시간 내 플레이리스트를 차지했다. 모든 노래의 가사를 외울 때까지 반복해서 들었고 나중에는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골라 듣는 전용 플레이리스트가 생겼다.


봄에는 <봄날의 기억> <두 번째 고백>

여름에는 <Summer Romance>

가을에는 <그려본다>

겨울에는 <울면 안 돼> <울어도 돼>

퇴근길엔 <괜찮아요> <집으로 가는 길> <Last day>



한동안 섭외를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무조건 그들을 추천했다. 선배 언니가 걔들이 잘하는 게 뭐냐고 물었을 때, 어떻게든 영업을 해보겠다고 열과 성을 다해 장점을 어필했다. 그러나 번번이 나의 어필은 실패로 돌아갔는데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언니들은 후회할 거다. 얘들은 분명 몸값이 뛴다. 그러니 내 연차가 쌓이면 제일 먼저 그들을 섭외하겠다고 다짐했다. 언젠가 그들이 긴 시간 동안 하나의 그룹으로 뭉쳐있을 때, 신화 방송처럼 그들만의 리얼리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연차가 쌓일수록 작가 생활은 진절머리가 나고 선배 언니의 괴롭힘에 공황까지 겪고 나니 작가에 대한 미련이 뚝 떨어졌다. 누군가와 함께 방송하고 싶다,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기대와 꿈은 현실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들의 노래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 무렵의 나는 지독한 만큼 어두운 우울감에 눈과 귀 모든 걸 막고 있었다. 존경할 만한 선배가 없다는 것. 그건 내게 너무 큰 상실이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자, 2020년의 봄날.

나는 다시 제주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운명처럼 첫 메인 작가 자리를 제안받았다. 그때는 내가 작가 10년 차가 되던 해였다. 전화 통화로 간략하게 받은 정보는 큐브TV에 송출되는 TMI 뉴스의 엔터테인먼트 버전이라는 거였다. TMI를 녹일 엔터는 채널명과 동일했는데 그곳은 그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곧바로 그들을 떠올리진 못했다. 첫 메인 작가 제안에 심장이 뛰어서 뭐가 됐든 기회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부담감도 엄청났지만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안 좋은 메인 작가의 사례들을 긴 시간 몸소 체험해왔으니, 최소한 내가 꿈꾸던 메인 작가의 롤을 다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이 진짜인지 테스트 해볼 완벽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완전히 작가 일을 접을 생각이었다. 싫어하던 선배들과 내가 다를 바 없다면 나는 이 바닥을 뜨는 게 맞는 거니까.


봄이 끝날 무렵부터 본격적인 기획에 들어갔다.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완전히 바꾸었고 팬들의 질문에 답해주는 구성을 가져왔다. 처음엔 팬 참여에 대한 주변의 우려가 있었다. 각기 다른 팬덤의 성향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냐는 우려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팬들의 진심을 믿었기에 마음이 맞는 PD님과 후배 작가와 함께 해당 구성을 밀어붙였고, 프로그램의 부제도 <휴덕 엔딩 프로젝트>라고 지었다.

모든 제작진이 팬의 마음으로 제작에 임했다. 레트로식 플랜카드를 만들었던 것도 그 일환이었다. 우리의 진심을 전하는 것. 우리는 너희들의 최애를 단순히 일회성 출연자로 소모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다짐이 통할 거라 믿었다.


어느 정도 구성이 마무리되고 MC 후보로 그들 중 하나가 고려됐을 때가 돼서야 예전의 내가 생각났다. 그들은 더는 신인이 아니었고 무명도 아니었다. 어엿한 배우돌을 탄생시켰고 저마다 자신들만의 색깔을 굳건하게 갖추고 있었다. 얼마 뒤 엔터를 대표하는 그룹인 만큼 자연스럽게 그들 중 하나가 MC로 결정됐다. 그렇게 그와의 미팅을 끝내고 돌아오던 길, 의욕이 폭발했다. 더 잘 만들고 싶었다.


그 프로그램은 내 작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1대 MC를 넘어 갓 전역한 그들 중 하나가 2대 MC가 됐을 때도 그랬다. 그들뿐 아니라 프로그램에서 만난 모든 이들이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 꿈꾸는 자들과의 협업은 언제나 행복했다. 그 친구들의 꿈이 펼쳐지는 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모두가 진심을 갈아 넣었다.


한 번은 2대 MC이자 최애였던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작가님, 매주 이렇게 대본을 쓰시는 거예요? 진짜 대단한데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으로 수만가지 대답이 떠올랐는데 결국 바보처럼 내가 한 말은 이랬다. “돈 주니까요!” (와나 참나!) 그래도 어쩐지 그의 말이 내 작가 인생 전체를 위로하는 것 같아서 한참이나 기분이 좋았다. (출연자와 작가의 거리 조절은 아주 중요한 문제라, 매번 그들에게 방해가 될까 선을 긋던 습관이 저 따위(?) 대답을 하게 만든 듯...!)


다만 그 프로그램에도 한계는 있었다. 각기 다른 아티스트의 스케줄을 하나로 모으는 것과 점점 줄어드는 아이템이 그러했다. 그 외 여러 가지 이슈가 겹쳐져서 결국 프로그램은 겨울이 다가올 때쯤 엎어졌다. 아쉬웠고 또 아쉬웠다. 그러나 (처음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팬들의 질문을 받는 오픈 카톡이 우리를 향한 응원과 감사의 글로 가득 차는 걸 보며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내게서 배울 점이 많다는 후배의 말에도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나는, 그날을 기점으로 새로운 꿈을 꿨다.




2022년.

그들이 완전체로 10주년을 맞이했고 내가 작가가 된 지는 12년째가 됐다. 나는 작년 봄부터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고 있다. 동종 업계에 방송작가가 필요한 이유를 증명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판을 벌이며 새로운 이들과 호흡을 맞추는 중이다.


만약 누군가 그들을 향한 지금의 마음이 어떠냐 묻는다면 동료로서 응원하는 마음이 더 강해졌다고 답하고 싶다. 그들뿐 아니라 이곳에서 만난 모든 이들의 꿈이 이뤄지길 바라며, 한낱 한 사람의 애정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더 큰 숲을 보게 됐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그들이 꾸는 꿈, 그 친구들의 노력, 모든 재능이 빛을 발하길 원한다.


엔터는 누군가의 꿈을 다루는 곳이며, 그 꿈을 좇는 팬들의 애정에 길을 내고 화답을 해야 하는 곳이다. 가끔은 팬들의 격한 반응에 상처를 입고 힘이 빠지고 가끔은 화가 났다가 또 반성도 하지만, 결국 우리가 가장 힘을 얻는 것도 팬들의 반응이다. 그 빠른 속도와 피드백은 나를 이 바닥에 머물게 하는 가장 매력적인 요소이기도 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 글을 쓰게 된 진짜 시작을 말하고자 한다. 사실 한동안 글이 써지지 않았다. 빠른 호흡으로 아이디어를 쏟아내면서 여러 그룹을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매번 진이 빠져서 집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글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일기 한 줄 쓰는 것도 힘들었으니까.


그러다 그들이 정규 3집 앨범을 냈다.

타이틀 곡을 듣는데, 내 서른 살의 봄이 생각나서 눈물이 조금 났다. 몇몇 가사들이 나를 위로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일렁였다. 7번 트랙 <Interlude : Re>를 듣는데 미친 듯이 글이 쓰고 싶어졌다. 꼭 뭔가에 홀린 것처럼 글이 쓰고 싶어졌다. 뭐라도 쓰지 않으면 후회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은 참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다시 브런치를 열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몇 개의 글이 쌓이고 방송작가 인생을 담은 매거진을 오픈하면서, 독립 출판에 대한 의지가 다시 샘솟았다. 노래 한 곡이 긴 시간의 무기력함을 깨부순 거다.



올해 서른 여섯의 나는, 다시 한 번 열심히 일해볼 생각이다. 새로운 꿈을 꾸며 젊음을 바쳐 무대 위의 자신을 그리는 이들을 위해. 더 많은 사람이 아티스트의 꿈을 알길 바라며,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해 볼 생각이다. 그래, 모든 이들의 꿈은 마땅히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꿈을 기대하며 다시 오늘을 산다.




(+)

이럴수가. 그들이 쇼챔에서 1위를 했단다.

어쩐지... 오늘은 무조건 이 글을 쓰고 싶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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