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른다섯

스물다섯스물하나의 희극과 비극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by 흐를일별진



오늘자 스물다섯스물하나 14화를 보고 나니 글이 쓰고 싶어졌다.

오늘 2521에서는 유림이의 사연으로 가족, 현실, 돈 그리고 귀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씬은 중국집에서의 씬이었다. 귀화를 선택한 한국 국가대표를 매국노라 칭하는 중국집 사장에게 유림이는 말했다. 내 선택이 뭐가 잘못됐냐고. 돈 때문에 나라를 판 게 아니라 돈 때문에 자신을 판 거라고. 사장님이 돈을 받고 짜장면을 파는 것처럼 나는 돈을 받고 나를 팔았다고 말하는 유림이를 보는 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드라마에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언급되는 건 희극과 비극이 함께 일어난다는 점이다. 소위 말해 기쁜 일과 슬픈 일은 꼭 한 번에 일어난다는 건데, 다르게 말하면 그 양극단의 감정은 꼭 서로가 있어야만 돋보인다. 감정은 무뎌지는 것이고, 무뎌져야만 하기에 희극과 비극은 공존하는 게 맞다. 그래야만 한다. 희극과 비극이 번갈아 일어나야 우리는 더 단단해진다. 시련을 겪고 극복하고 기뻐했다가 다시 시련을 겪으며 성장한다. 그게 바로 이 드라마가 진짜 하고자 하는 말인 것 같다. 일상 드라마에 로맨스를 얹은 것뿐이다.

그런 면에서 세상의 누구도 유림이의 선택을 욕할 수 없다. 유림이는 가족의 희극을 위해 자신의 비극을 선택했다. 유림이의 항변처럼 그녀의 선택이 세상의 비극이 될리는 없다.

가끔 우리나라 사람들은 묘한 곳에서 애국심을 드러내는데, 정작 누구도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는 한 함부로 타인의 선택에 돌을 던질 수는 없다. (물론 과거 역사의 그릇된 선택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과거가 아니다. 과거와 동일한 애국심을 요구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일을 1차원적으로 봐선 안되겠다 생각했다. 나는 지금껏 타인의 선택들에 어떤 반응을 보였었나. 비극을 감수하려는 이의 희극을 기대하며 그저 지켜봐 줄 순 없었나, 하는 생각도 했다.




이 드라마에는 유독 궁예가 많았다. 사망설, 이별설 뭐 온갖게 있었는데 오늘로써 어느 정도 그 궁예들이 정리된 듯싶다.

희도와 이진은 결국 각자의 길을 걷게 됐다. 희도는 국가대표 펜싱 선수로서 자리를 잡았으며 이진은 메인 앵커 자리를 따냈다. 그 과정에서 묵묵히 서로를 응원했을 것이며 소중했던 경험들을 기반 삼아 각자 앞으로 나가갔을 것이다. 굳이 서로를 상처주지 않고 오롯이 자신만의 희극과 비극으로 이뤄낸 결과였을 거다. 후회는 남았을 지언정 미련은 없겠지. 누군가는 함께 비극을 나눈다지만 어떤 이에겐 그 상황 자체가 힘들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이진은 더이상 자신의 존재가 희도의 비극이 되는 걸 원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굳이 겪지 않아도 될 비극을 희도가 피할 수 있길 바랐던 건지도 모른다. (신경 쓰이는 건 2화가 남은 상황에서 그들의 만남과 이별을 어떻게 풀어낼지...)




영원할 것 같던 순간은 찰나가 된다. 매 순간 쌓이는 오늘은 행복했던 어제를 과거로 만든다. 그렇게 밀려나고 밀려나서, 결국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더라도 우리는 안다. 스치듯 떠오를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걸. 잊고 살다가도 한 번씩 옛 추억을 상기시키는 무언가를 보게될 때면, "그래. 그때 진짜 좋았지"하며 되려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과거는 그렇다.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 시절의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좋았던 순간은 잊히는 게 자연스럽다. 그래야만 한다. 과거에 머물러선 성장할 수 없다. 과거가 한평생 지금과 경쟁해야 한다면, 그 얼마나 피곤한 인생이겠는가.


인생은 업데이트다. 기억도 업데이트가 되어야 성장할 수 있다. 좋았던 기억, 영원할 것만 같던 기억은 그 업데이트의 초석이 된다. 단단하게 과거로 초석을 쌓아두고 오늘을 덧 입혀 더 나은 미래로 걸어가야 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지금 흐름이 좋다.


맞다. 영원한 건 없다.

하지만

그래서, 영원할 것만 같은 순간은 지극히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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