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로 찾은 일상의 의미
스무 살.
가깝고도 멀게 지냈던 친구가 있었다.
뽀얀 피부에 뭔가 럭셔리한 아우라를 풍기는 그 애는 조용한 듯하면서도 조용하지 않았다. 가끔은 내게 좋은 말을 해주기도 했다. 지금도 명확히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나를 쳐다보면서 내 머리가 예쁘다 그랬나, 넌 정말 귀엽다고 했나. 진심을 가득 담은 얼굴로 나를 칭찬하던 그 모습. 친구는 창가에 앉았었는데 그녀의 뒤로 햇살이 들어오는 천안의 풍경이 기억날 정도니, 그 순간이 내게는 제법 강렬했나 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 노는 무리가 정해질 때쯤 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이후 이런저런 소식이 들려왔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막 친하진 않지만, 마주치면 웃고 호의를 가득 담아 인사했던 사이. 그러니 남들의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노느라 정신없던 나와 달리 열심히 학점을 관리하는 그 친구를 대단하다 생각했을 뿐. 그 정도의 관계였다,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딱히 과에 큰 애정도 미움도 없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계획했던 길을 향하면서 과 동기들과 멀어졌다. (지극히 소수의 인원 몇만 빼고) 다만 SNS를 통해서 대학 동기들이나 후배들, 선배들의 소식을 접하곤 했는데 그마저도 크게 관심을 두진 않았다. 흔히 그렇듯 얘는 졸업하고 이렇게 사네, 쟤는 저렇게 사네. 시간의 흐름을 확인하는 용도랄까. 딱 그 정도로 동기들의 SNS를 구경하곤 했는데 유독 그 친구의 일상만 주기적으로 찾아봤다. 영화처럼 선명한 기억이 관계의 아쉬움으로 남아서일까. 그 친구의 일상을 보면서 한 번씩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중간에 그 친구가 SNS 팔로잉 목록을 정리한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거기서 살아남은(?)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의 SNS엔 가능성이 넘쳐났다. 꿈이 있었고 도전이 있었으며 좋은 사람들과의 생산적인 만남이 넘쳐났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가득했다. 그녀의 일상을 계속 보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부러워하기도 했다. 누구나 그렇듯 그 이면엔 힘듦이 있겠지만, 그래도 가능성을 향해 달려가는 그 모습이 얼마나 멋있던지. 나도 그 친구가 하는 것처럼 좋은 크루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런 감정들이 질투는 아니었던 게, 아예 나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 같았다. 애초에 질투가 성립될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늘 나보다 앞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이 좋았고.
결혼 소식을 봤을 땐 그 자리에 참석해 "결혼 축하해!"라고 말하는 나를 상상했고 다른 동기들이 보낸 선물에 감사 인사를 전하는 글엔 내가 보낸 선물을 상상했다. 예쁜 딸아이의 사진을 볼 때는 뭔가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 서로를 기억하는 마음이 다를까 봐. 그 친구가 가진 주변의 인연에 비해 내가 너무 보잘것없을까 봐. 혹은 그냥 그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끝내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친구가 내 게시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눈이 번뜩 뜨였다. 안 자고 있던 나는 그 피드백을 핑계 삼아 DM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짧게 과거를 이야기하고 근황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간 혼자만 품고 있던 아쉬운 마음을 고스란히 쏟아냈고, 친구는 내가 힘이 된다고 했다. 재밌는 건 정작 힘을 얻은 건 나였다는 사실이다. 그 무렵의 나는 모든 게 재미없고 일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엔터의 일에 피곤함을 느끼던 중이었는데, 내 존재가 가치 있게 느껴졌다. 힘이 될 수 있다니. 그것도 긴 시간 말을 걸어보고 싶었던 친구에게 말이다.
그 대화가 물꼬를 튼 건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만남 약속이 잡혔다. 심지어 친구뿐 아니라 그녀의 남편까지 함께. 이게 맞나 싶으면서도 상황이 재밌었고 새로웠다. 친구와의 만남이었지만 격식 있는 자리처럼 느껴져서 어쩔 줄 몰랐다. 만나기로 한 장소가 하필이면 레스토랑이라 이걸 어쩌나 옷을 어떻게 입나 별의별 걱정을 다 했다. 요즘 나는 선머슴처럼 입고 다니는데. 심지어 해산물도 못 먹는데 이 말은 또 어떻게 하나. (근데 그 와중에 식당에서 먹은 연어. 연어 맞나, 암튼 대 존맛 눈 튀어나올 뻔함) 혼자 온갖 상상을 하며 한껏 어깨가 접혀 있었다.
오늘, 내 걱정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대략 10년 만에 만난 친구는 변함이 없었다. 변한 건 나였다. 행복했다. 이렇게도 만나는구나. 어색함도 없었다. 우리가 이렇게 어른이 됐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이 만남은 SNS의 순기능으로 인한 건가.
자연스럽게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놓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좋은 대화는 과거의 힘듦을 (끝내 이겨낸) 경험으로 만들더라. 그 친구는 멀어지지 않았다. 아니, 멀어진 적 없었다. 조금 더 일찍 연락해볼 걸 싶다가도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만난 게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타이밍이란 게 있으니까.
오늘의 만남은 다시, 의미를 찾게 했다. 일상의 의미는 가까이에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의 좋은 대화만으로도 의미가 생긴다.
생유, 인별!